다시 평화의 노래를 부를 때

2024-10-03

청명한 가을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잠자리와 저 멀리 편대비행을 하는 헬리콥터가 겹쳐 보인다. 거리 때문인지 둘의 크기가 엇비슷하게 보인다. 비현실적 광경이다. 강남에서 제일 높은 빌딩 주변을 선회한 수십 대의 헬리콥터는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본다면 멋진 광경이다. 제76주년 국군의날 행사에 참여하는 부대의 예행연습이었을 것이다. 며칠 동안 전투기가 날면서 내는 굉음이 우리 일상을 뒤흔들었다. 국군의날 오후 첨단 무기를 탑재한 차와 병력이 서울의 도심 한복판을 행진했다. 괴물 미사일로 불리는 현무-5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지하 벙커 깊은 곳에 숨은 적을 타격하는 능력을 갖췄다 한다. 당국자는 이 행사가 국군의 위용을 보여주는 동시에 대북 억지력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행사를 보고 가슴이 벅찼다고 말하는 이도 있고,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려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포성이 멎기도 전에 헤즈볼라를 궤멸시킨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전쟁이 개시되었다. 헤즈볼라 대원들이 차고 있던 삐삐가 일시에 폭발해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쳤다.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기기들이 언제든 우리를 해칠 수 있는 무기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꽁꽁 숨은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은신처를 찾아내 정밀 유도 시스템이 장착된 100여발의 벙커버스터를 쏟아부어 그를 제거했다. 일부 언론은 18년 동안이나 헤즈볼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한 모사드의 정보력에 찬사를 보냈다. 첨단 무기에 대한 놀람, 모사드의 정보력에 대한 찬사 속에는 죽어간 생명에 대한 애도는 없었다. 이스라엘은 마침내 헤즈볼라 궤멸을 목표로 그들의 집결지인 레바논 남부 지역을 집중 포격했고 지상군까지 투입했다. 선을 넘은 것이다. 아랍 세계 리더 국가인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확전 가능성에 불을 질렀다. 중동이라는 화약고가 폭발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젊은 시절부터 중얼거리던 노래가 저절로 떠오른다.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뿐 그 지겨움 끝없네.” 전쟁은 인간의 본능일까? 평화의 꿈이 어리석은 것일까?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유형적인 것도 파괴하지만 우리 속에 애써 가꾸고 있던 평화의 꿈도 파괴한다. 강력한 군사력만이 평화를 제공한다는 말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실이 아니다. 전쟁 억지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걸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다.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따르는 것처럼 과시적 행동은 또 다른 과시 행동을 부른다. 증오의 쳇바퀴는 그렇게 속도감을 높인다. 평화의 싹은 그 서슬에 짓뭉겨지고 만다.

‘평화에 이르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폭탄으로 문명과 생명을 파괴할 수는 있지만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리는 증오심은 제거할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포자가 땅속에서 번져가듯 테러와 공포의 기억은 누군가의 가슴속에 깃들어 자기를 드러낼 날을 기다린다. 나라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무너진 것을 보고 기원전 6세기의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렇게 탄식한다. “내 백성의 도성이 망하였다.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성 안 길거리에서 기절하니, 나의 눈이 눈물로 상하고, 창자가 들끓으며, 간이 땅에 쏟아진다. 아이들이 어머니의 품에서 숨져 가면서, 먹을 것 마실 것을 찾으며 달라고 조르다가, 성 안 길거리에서 부상당한 사람처럼 쓰러진다.”

큰 소리가 세미한 소리를 압도하고, 증오가 평화의 꿈을 제압하는 야만의 시대가 다시 열리고 있는가? 전쟁을 기획하고 수행함으로 이익을 얻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작은 생명들의 신음소리를 듣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귀를 막는다. 그들의 죽음은 부수적 손실일 뿐이다. 정말 그러한가? 모든 생명은 기적이다. 그 하나의 생명이 탄생하기까지 온 우주가 동참했다. 다시 평화의 노래를 불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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