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이야기 한 토막! 꽤나 오래전, 내가 다니던 미술대학 옆에는 미술재료를 파는 자그마한 가게가 있었다. 가게는 작지만 이름은 거창하게 〈별나라화방〉.
부잣집 따님들인 여학생들은 당연히 깔끔한 현찰 거래였지만, 가난한 남학생들은 외상 달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학생증 맡기고 외상술 먹고, 라면이나 짜장면 먹고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외상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외상이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고, 그걸 견디다 못한 주인 양반이 꾀를 내서, 계산대 앞에 이렇게 쓴 쪽지를 붙였다.
‘내일은 외상, 오늘은 현금’
대단한 명문장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기다리는 내일은 오지를 않고, 하루하루 매일매일이 오늘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항상 현금을 내라는 말씀이다. ‘외상 사절’이라고 야멸차게 선언하지 않고, 은근히 돌려 말하는 주인 양반의 애교(?)가 귀엽다고나 할까? 그 쪽지 덕에 정말 외상이 줄어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그 명문장이 별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우리는 그 명문장을 이렇게 새겨 읽었다. 그게 통하는 좋은 시절이었다.
‘오늘은 외상, 내일은 현금’
이런 옛 생각이 불쑥 떠오른 것은, 돌아보니 내 인생이 ‘외상 인생’이었고, 그 빚을 갚을 길이 막막하다는 깨달음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철 늦은 반성….
생각해보자. 하늘님의 보살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것부터 외상이었다. 공짜로 태어났으니 사람구실 제대로 하라는 말씀… 살면서 착실하게 갚으라는 깊은 뜻이 담긴 외상이었다. (하늘님이라는 낱말은 하나님과 하느님 사이의 갈등을 비켜가려는 생각으로 쓴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삶의 굽이굽이 고비고비마다 보살피고 거두어주신 은혜도 모두 외상이다. 학생증도 맡기지 않았는데, 아무런 담보도 없이 무이자로 그냥 베풀어주신 외상이다.
오늘날 우리 생활방식으로 굳어진 크레딧카드의 실체는 외상거래다. 악착같이 이자를 뜯어가는 외상이다. 그래도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처럼 거침없이 긁고 본다. 그리고는, 카드빚을 제때 갚으려 애를 쓴다. 이자가 아까워서… 그런데, 하늘님께서 주신 외상은 무이자인데도 갚을 생각을 않는다. 외상 빚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간다.
둘러보면, 온통 갚아야 할 외상투성이다. 부모님, 식구들, 친구들, 스승님, 어르신들…. 그 은혜에 기대어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빚을 갚기는커녕 사람노릇 하나 제대로 못 하고 있으니 참 딱하고 부끄럽다.
신세를 갚아야 할 외상이 너무도 많다. 물, 나무, 흙, 땅, 바위, 산, 공기, 바람, 햇살 같은 자연, 나라, 지구별, 우주, 시간, 공간… 제 몸을 먹을거리로 내주는 가축들, 달걀을 제공하는 닭… 벌레나 곤충 등… 끝이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나는 제일 먼저 자연에 진 외상부터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해, 지구온난화, 기후변화, 자연재해 등 지금 지구별이 앓고 있는 심각한 병을 고치지 않으면 우리도 살 수 없다.
그동안 함부로 더럽히고 낭비한 죄를 엎드려 반성하고,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아껴 쓰는 작은 일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흔히 공해나 환경오염, 자연보호 같은 것은 워낙 거창한 문제라서 개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인식이 강해서 “나 하나쯤이야”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나 하나만이라도”라는 생각이 지구를 살리는 첫걸음이라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외상 갚는 마음으로 살면, 늘 겸손하고 부지런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장소현 /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