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험한 것은 잘못된 확신…연상호 ‘계시록’의 믿음

2025-03-28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1997년 신승수 감독이 만든 ‘할렐루야’는 배우 박중훈이 전성기 때 나온 코미디이다. 룸살롱 호스티스 대리운전을 하며 살아가던 3류 건달이 목사가 타고 있던 차와 교통사고를 일으키고 상대가 코마에 빠지자 대신 목사 흉내를 내며 일확천금을 노린다는 이야기다. 생전 기도 한번 해 본 적이 없던 주인공은 비록 이상하고 전통적인 방식은 아니긴 해도 교회 장로들의 신임을 얻고 점점 담임 목사의 자리로 올라간다. 그러나 그럴수록 오히려 자신이 이래도 되는지 회의에 빠진다. 영화는 ‘착해 빠진’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목스박’, 교회 풍자한 ‘할렐루야’ 계승

영화는 늘 시대와 사회를 반영해 왔다. 종교, 특히 개신교에 대한 풍자는 한국 영화 곳곳에서 때로는 웃음과 희망적인 모습으로, 때로는 간악한 범죄와 두 얼굴의 위선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 예상과는 달리 한국의 기독교가 세상을 변혁하거나 정의의 역사를 대변한다는 식의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영화가 그려 온 국내 교회와 교회 종사자들은 모습은 어느 정도는 일그러진 초상화였다. 영화 ‘할렐루야’는 한편으로는 김영삼 문민정부 시대가 이뤄 낸 열린 사회의 성과를 반영한 작품이었다. 김영삼의 최대 업적 중 하나는 영화가 정치와 종교를 코믹하게 폄훼하고 풍자할 수 있었던 세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할렐루야’는 그 정도가 매우 귀여운 수준이었다. 대중들이 이 영화에 반응했다. 서울에서만 31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지금 수준으로는 300만 명 이상의 흥행을 한 셈이다.

비교적 최근인 2024년작 ‘목스박’이라는, 다소 사소해 보이는 코미디 영화 역시 27년 전의 ‘할렐루야’를 계승한 것이다. 목사와 스님과 박수무당이라는 신종 3인조 건달이 나온다. 역시 조폭이 목사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경찰의 수배를 피해서인데, 문제는 이 목사(오대환)의 찬송가 음색이 파리넬리 급이라는 것에서 시작한다. 신도들이 열광하기 시작한다. 가짜 목사도, 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지역사회 교화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헤비메탈급 패션 감각의 건달용 가죽장갑을 낀 채 입에는 욕을 달고 산다. 가벼운 폭력은 기본이다. 영화는 한국의 뒷골목 사회가 급격히 교회 커뮤니티와 결합하는 과정을 그린다. 줄기는 코미디지만 이야기가 가는 행로를 지켜보면 왠지 찝찝한 맛이 느껴진다. 웃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된다. 한국 교회는 이제 조폭 사회인가. 그만큼 저급하고 천박해졌다는 이야기인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도통 어디로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는 아닌가.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다수의 작품이 경합을 벌였고 그 대다수가 국내에 개봉됐지만 대체로 흥행에서 실패했다. 작품상·감독상까지 탄 ‘아노라’가 대표적이고(7만7441명) 남우주연상의 ‘브루탈리스트’도 관객 동원에 실패했다(9만1224명). 여우조연상 수상의 ‘에밀리아 페레즈’는 명성과 소문에 비해 완전히 참패한 수준이다(3만1549명). 아카데미 후보작 중 거의 유일한 ‘위너’는 교황 선출 과정을 그린 ‘콘클라베’이다. 개신교와 달리 대중들에게 여전히 신성시되는 측면이 있는 가톨릭 교회의 이야기가 오랜만에 관심을 모았고(26일 현재 20만1963명) 영화의 내용이 계속해서 인구에 회자 중이다. 한국의 종교가 성찰해야 할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영화 속 바티칸 행정처장인 토마스 로렌스 추기경(랄프 파인즈)은 콘클라베를 앞두고 전 세계에서 온 추기경 107명 앞에서 이런 스피치를 한다. “신앙이 살아 있는 이유는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의심은 신비를 낳고 신비는 신앙으로 이어집니다. 의심하는 교황, 죄를 짓는 교황이 새로 나오기를 바랍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교황만이 죄짓는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제일 무서운 것은 확신입니다. 확신은 통합과 포용의 적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성입니다.” 영화의 이 대사는 한국 사회 지식인 사회에서 ‘조용한 폭발’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잘못된 확신, 잘못된 믿음이 보여 주는 여럿의 비행, 그 문제를 현재 눈앞에서 똑똑히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에 가톨릭과 개신교 교회가 한국사회에 끼친 영향은 거의 절대적인 수준이었다. 종교영화도 당연히 덩달아 사람들의 인성과 지력을 상승시키는 쪽으로 작동했다. 1993년 개봉됐던 ‘로메로’는 1977년 엘살바도르의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암살된 오스카 로메로 주교의 얘기를 다룬다. 이 영화로 사람들은 엘살바도르라는 나라, 중미의 나라들까지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치와 언론, 사상의 자유를 원하고 있고 그것을 위해 종교 스스로 희생할 각오가 단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알려진 것도 그 시기이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 작전에 참여하고 총을 들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한 성공회 목사인데, 국내에선 그의 이미지가 왜곡되어 왔다. 그에 대한 영화 ‘본회퍼 : 목사. 스파이. 암살자’는 4월 9일 개봉한다.

격렬한 한국사회 한가운데에 개신교회들이 자리하고 있고 대체로 대형 교회들의 행보가 많은 논란을 낳고 있다는 점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 한국사회는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쟁점이 발화하고 있다. 하나는 정치이고 하나는 종교, 특히 개신교라는 지적이 많다. 더 큰 문제는 이 둘이 자본주의 방식으로 결합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상징성이 대형 교회들이다. 교회가 신도 수로 헌금 수익을 늘리고 그렇게 축적된 자본을 유지하고 세습하는 데 있어 정치를 일정한 보호막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구국 기도회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격렬하고 위험한 한국의 사회와 교회를 일관되게 비판하고 있는 감독이 바로 연상호이다. 좀비영화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 감독이 된 그는 영화와 드라마 분야를 종횡무진으로 오가며 자신의 영화적 사명이 국내 교회들에 대한 비판에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영화 ‘사이비’는 국내 교회의 상당수가 사이비 이단이 돼있음을 다소 과격한 톤으로 ‘공격’한 작품이지만 애니메이션이었던 탓에 논란‘화’에는 이르지 않았던 작품이다. 연상호의 최대 화제작으로 넷플릭스 시즌 드라마였던 ‘지옥’ 역시 한 신흥 종교단체의 문제를 다룬다. 이 종교의 지도자(유아인)는 지옥의 사자에 의해 희생될 사람의 명단을 가지고 사회적 공포를 유발시킨다. 그는 결국 세상이 ‘휴거’될 것이라 전파한다. 곧 세상에 종말이 오고 누군가 하늘의 뜻을 실현할 것이라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혹세무민이다. 그럼에도 대중들의 무지몽매함은 신흥종교를 점점 절대시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이 종교 지도자의 궁극적 목표는 세상을 무정부주의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야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정하게 연상호 본인의 생각이 투영돼 있는 이 드라마의 테마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사람들에게 종교, 신앙 그리고 교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새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다. 연상호의 효능감은 작금의 한국사회, 특히 개신교 교회에 끊임없이 문제의식을 던져 준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로메로’ 독재정권에 맞선 주교 이야기

연상호의 최신작 ‘계시록’은 한국의 교회가 계시록 혹은 묵시록이나 예언서를 동원해 사회를 우회적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주인공인 성민찬 목사(류준열)는 아무 생각 없이 펼친 신명기를 이용해 저주와 복수의 설법을 펼친다. 영화 ‘계시록’은 또 한국의 대형교회들이 자본주의적 독과점에 맛 들려 있음을 비판한다. 성민찬의 멘토인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는 경기도 근교에 또 다른 교회를 신축 중이다. 교회를 프랜차이즈 분점이나 지점처럼 여는 것이다. 이 목사는 거기에 자신의 아들을 담임 목사로 보낼 생각이지만 여신도와의 성추문이 터진다. 어부지리로 대형교회 목사가 될 참인 주인공은 자신의 아내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스캔들을 우려해 그녀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서한다고 말한다. 기독교가 지나치게 세속화되어 있으며 위선적인 데다 권력지향적이 됐음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소리치고 있는 감독이 바로 연상호이다. 그가 전적으로 옳지는 않지만, 그의 이야기들은 꽤나 사실관계를 파악한 흔적이 농후하며,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설득력을 지닌다.

정치든 종교든 영화든, 가장 위험한 것은 잘못된 확신이다. 그것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시대에 있어 가장 공포스러운 이데올로기이다. 역설적으로 그 확신의 강도를 줄이는 것, 믿음보다는 의심의 수치를 높이는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일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에 대해 영화가, 특히 한국영화가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걸 취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는 관객, 국민의 몫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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