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치
“과거 따윈 필요없다”며 흔한 기념사진 한 장 남기지 않는다. 창립기념일도, 사사(社史)도 없다. 과거에 연연하면 돌로 변해버린다며 회사 곳곳에 화석을 놔둔 ‘괴짜’ 부자가 있다. 올해 79세 다키자키 다케미쓰(滝崎 武光·79) 키엔스 명예회장이다.
매년 포브스가 집계하는 일본 억만장자 순위에서 소프트뱅크그룹 손 마사요시(孫正義) 회장과 유니클로의 패스트리테일링 야나이 다다시(柳井正) 회장과 순위를 다툴 정도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은 전무한 ‘그림자 억만장자’. 2전3기 끝, 세계 각지에서 광센서와 현미경 등 공장 자동화 기기를 판매하는 괴물 기업 키엔스를 세운 ‘전설’이기도 하다.
일본 억만장자 순위가 발표될 때마다 한 번씩 등장하는 이름이지만 그의 진가는 손 회장(270억 달러·약 40조원)과 야나이 회장(380억 달러·약 56조원)에 이은 일본 부자 3위(210억 달러·약 30조8000억원)란 타이틀에 있지 않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옷이나 통신 서비스를 파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은 전혀 모를 공장 기기용 센서를 팔면서도 ‘평균 직원 연령 35.2세. 평균 연봉 2067만 엔(약 2억원)’이라는 놀라운 꿈의 회사를 일궈낸 데에 있다.

“부가가치”에 꽂힌 청년
다키자키 회장은 전쟁이 끝나기 직전인 1945년 6월 효고(兵庫)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이나 어린 시절에 대해선 지금껏 알려진 것이 별로 없는데, 닛케이 비즈니스 등과 두어 차례 인터뷰를 통해 그가 밝힌 것은 평범한 월급쟁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는 점이다. 그는 부친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간사이(関西) 지역의 기계 공장을 둘러보게 되면서 제조업에 대한 동경심을 갖게 됐다.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인 소학교 6학년 때, 아버지와 한 제철소를 방문했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제철소 안에 버스가 달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다키자키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면이 있었던지 제철소를 둘러본 뒤 “이 큰 공장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생각에 빠졌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생각이 많은 아이였던 셈이다.
동창생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도 비슷했다. 졸업 앨범에 “다음에 만날 때는 테이프 레코더를 만들고 있겠지”라고 적을 정도로 물건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호기심도 많은 편으로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 10엔(약 100원)씩 모아 약국에서 마그네슘을 사서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영향 탓인지 그는 아마가사키(尼崎)공고로 진학한다. 효고현 남부에 있는 공업 도시에 있는 학교로, 당시 학교 주변엔 유명 전자회사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