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이 병원에 가는 나라

2025-01-08

[문정주의 의료와 사회-8]

난데없는 계엄 선포에 놀란 가슴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아.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막아선 덕분에 대통령의 내란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온 나라에 큰 충격을 주었어. 다른 무엇보다, 튼튼하다고 믿었던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매우 허약하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대통령과 몇몇 측근이 일을 꾸미면 언제든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있고,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한 민주주의 체제를 삽시간에 허물 수도 있는 거였어.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도록 헌법과 정치 제도를 꼼꼼히 살펴보고 민주주의를 더욱 튼튼하게 해야 할 숙제가 우리 모두에게 남았어.

'튼튼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허약한 것'이 하나 더 있어. 우리나라의 의료제도야. 국민을 위한 건강보험이 있다고 해도 이 제도는 의료보장이라는 목적에 비추면 허점이 많아. 이제 우리나라가 노인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서는 ‘초고령사회’가 된 만큼, 건강보험을 비롯한 의료제도 개선이 시급해.

그러면 우리 의료제도에 관해 알아볼까? 먼저 우리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해. 뭔가를 제대로 알려면, 더구나 그 뭔가가 내게 가깝고 익숙한 것이라면, 평소보다 거리를 두고 바깥의 시선을 빌려서 보아야만 해. 그걸 어떻게 하냐고? 어렵지 않아. 국제기구가 내놓는 통계를 통해 우리를 돌아보면 돼. 국제기구는 사회의 여러 현상에 관해 회원국 공통으로 자료를 수집해서 통계를 만들어. 그걸 참고하면 우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

의료제도에 관해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이하 OECD)의 보건통계가 널리 활용돼. OECD는 1948년에 서유럽 16개 국가가 경제 발전을 위해서 만든 국제기구야. 1960년대에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등을 회원국으로 받기 시작했고, 1996년엔 우리나라도 회원국으로 가입해. 2000년 이후에는 동유럽과 중남미 국가도 조금씩 받아들여 회원국의 범위를 넓히고 있어. 경제협력이 목적이지만,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 국제적인 통계를 내놓는 것으로도 유명해.

외래진료 횟수와 CT 촬영 건수가 세계 최고

OECD 보건통계에 나타나는 우리나라의 모습은 특이해. 조사 결과가 전체 회원국 중에 가장 많거나 가장 적거나, 가장 높거나 가장 낮거나 하는 거야. 대표적으로 외래진료를 받는 횟수를 들 수 있어. OECD에서 우리가 최고로 많아. 국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가 2022년에 17.5회로 전체 회원국의 평균인 6.3회의 거의 3배야. 2022년뿐 아니라 이미 십여 년 전 통계에서부터 비슷한 결과가 나오고 있어.

또 있어. 컴퓨터단층촬영(CT)을 우리가 최고로 많이 해. 인구 천 명당 촬영 건수가 2022년에 304건으로 전체 회원국의 평균인 168건의 거의 두 배야. 방사선 정밀검사인 CT를 우리가 OECD의 어떤 나라보다 많이 한 건데, 이 역시 2022년뿐 아니라 몇 년 전 통계에서부터 한결같게 나오는 결과야.

뜻밖이지? 유럽과 미국과 일본 등,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보다 우리가 더 많이 외래진료와 CT 촬영을 하고 있다는 게 말이야. 아플 때만 가는 곳이 병원인데 우리가 이용하는 횟수가 과연 그렇게 많았나 새삼 돌아보게도 돼.

이왕 ‘객관적으로’ 보기로 했으니 조금 더 들여다보자. 환자가 병원이나 의원에 다니면서 의사에게 진찰받고 치료받는 걸 외래진료라고 해. 외래(外來. ambulatory)는 외부 사람이 병원에 다녀간다는 뜻이야. 반대말은 입원으로, 환자가 병원의 입원실에 머무는 거야. 중한 병에 걸렸거나 큰 수술을 할 때 입원해. 하지만 감기나 단순한 고혈압처럼 쉽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일 때는 환자가 병원의 진료실을 그저 ‘다니면서’ 외래진료를 받아.

우리나라에서 환자는 외래진료를 받으러 여러 곳으로 다녀. 감기나 고혈압은 내과, 복통은 외과, 여성 생리통은 산부인과, 손목은 정형외과, 요통은 신경외과, 두통은 신경과, 불면증은 정신과로 가는 거야. 대다수 의사가 전문의로서 자기 분야만 진료하기 때문에 환자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이곳저곳으로 다녀야 하는 만큼 진료 횟수가 많아. 반면에 서구 국가에는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General Physician)의 비율이 우리보다 훨씬 높아. 특히 스웨덴, 노르웨이, 포르투갈, 캐나다 등에는 일반의가 전문의와 숫자가 거의 같을 정도로 비중이 커. 이 의사는 대부분 동네 주치의로서 가벼운 질병을 치료하고 환자와 폭넓게 상담하며 왕진도 해. 주치의의 진료실에서 환자는 건강에 관해 어떤 것이든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이곳저곳으로 다녀야 할 일이 별로 없어.

의사들이 제각기 전문과목이라는 칸 안에 머물러 있고 주치의 제도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환자는 ‘알아서’ 병원을 이용해. 무슨 진료과로 가서 어떤 치료를 받을지 스스로 정하는 거야. 그렇게 하는 데 익숙해진 환자 중에 일부는 ‘알아서’ 거의 매일 병원에 다녀. 의사의 판단이나 권고와는 상관없이 말이지. 가장 빈번한 예가 진통제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고 침 치료를 받으러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를 순회하듯 다니는 환자야. 하루에 두세 곳씩 이용하기도 해. 건강을 위하는 마음에서겠지만, 실은 필요하지도 않은 치료를 무의미하게 많이 받는 거라고도 할 수 있어.

CT 촬영도 지나칠 만큼 많이 해. CT는 방사선 기계가 환자의 몸 주위를 360도로 돌면서 내부 단면을 보여주고 이상이 생긴 곳을 찾는 검사야. 첨단 검사라서 비용이 20만 원 안팎으로 높아.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문제는 A병원에서 환자에게 이미 CT 촬영을 했어도 B병원으로 옮겨 가면 거기서 또 하게 하는 거야. 앞서 촬영한 영상의 질이 낮다든가 필요한 영상을 빠트렸다든가 하는 이유가 있지만, 불필요한 재촬영도 드물지 않아. 아니, 안 해도 될 것을 환자에게 시킨다는 게 말이 되냐고? 맞아, 값이 비싸기도 하고, 더욱이 이 검사는 일반적인 X선 검사보다 방사선을 50배나 더 쬐게 하는데, 안 해도 될 재촬영을 한다는 건 잘못이지. 그런데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촬영을 많이 할수록 병원에 이익이 커지는 까닭이야. 이에 더해 병원과 병원 사이에 치열한 경쟁만 있고 역할 분담이나 협력 체계가 없는 의료제도의 허점 때문이야.

의사 수는 가장 적고

그렇다면 OECD 보건통계에서 우리가 다른 나라에 견주어 가장 적거나 낮게 나오는 건 뭐냐고? 음, 바로 의사 숫자야. 전체 회원국 중에 바닥이야. 인구 천 명당 의사가 2022년에 2.6명으로 멕시코와 공동 꼴찌인데 실은 우리나라의 숫자에는 한의사가 포함돼 있어서 ‘의사’로만 한다면 겨우 2.1명으로 진짜 꼴찌인 셈이야. OECD 평균인 인구 천 명당 의사 3.8명이 우리에게는 아득한 목표인 거지.

의사 수가 꼴찌라는 게 씁쓸하지? 지난 백여 년 동안 우리 민족이 힘겨운 세월을 겪느라 의사를 충분히 길러내지 못해서 그래.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이 의사가 되는 길은 바늘구멍이었고, 해방되고는 이념 대립과 참혹한 전쟁에 시달려야 했어. 그 뒤에 들어선 독재정권은 경제개발만 내세울 뿐 의사를 늘리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았어. 1990년에야 간신히 인구 천 명당 의사가 1.0명이 되었을 정도로 부족했는데 말이지.

의사 부족으로 문제가 심각해. 수가 적을 뿐 아니라 골고루 분포하지 않아서 더 심각해. 응급과 중증질환 분야는 의사의 개인 삶을 희생해야 할 만큼 고달프면서도 보상이 크지 않아서 하겠다는 사람이 적고, 피부미용같이 손쉽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쪽에는 지원자가 몰려.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병을 낫게 하는 분야에서 의사를 구하기가 힘든 거야.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응급실 운영이 곤란할 정도야.

작년에 정부가 의대 정원을 확대한다고 했을 때 국민 대다수가 환영했던 건 이와 같은 현실 때문이었어. 그러나 정부 발표에는 뜬금없이 2,000명의 학생을 단번에 늘린다는 것뿐, 꼭 필요한 곳에 골고루 의사가 있게끔 하는 방안이 없었어. 빈 깡통 같은 그런 계획 말고 제대로 된 방안이 나와야 해.

진료횟수는 많아도 질 낮은 의료

의사가 부족한데 외래진료 횟수는 세계에서 최고로 많은 탓에 우리나라 의사는 바빠. 그래서 ‘3분 진료’가 보통이고, 환자는 의사에게 뭔가를 물어보거나 설명을 부탁할 엄두를 내지 못해. 이런 우리나라에서 의료의 질은 과연 어떨까.

OECD 보건통계에서 의료의 질을 평가하는 지표로 ‘피할 수 있는 병원입원’이 있어. 병원입원을 피하게 해줘야 질 높은 의료라고 보는 거야. 외래진료로 다스릴 수 있는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서 환자 상태가 나빠지고 입원해야 한다면, 게다가 그런 예가 빈번하다면, 그 나라의 의료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어.

외래진료로 다스릴 수 있는, 그러나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반드시 입원하게 되는 대표적인 질병이 당뇨병이야. 이 병은 일단 발병하면 생애 내내 지속되고 술과 담배, 음식과 운동 등 환자의 생활습관이 병세를 좌우할 만큼 중요해. 그래서 환자가 스스로 생활을 관리해야 하고, 의사는 질병 상태를 점검하며 약을 처방하고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해. 이렇게 하면 외래진료만으로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어. 그러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소홀히 하면 환자 상태가 나빠져. 결국 ‘피할 수 있는’ 병원입원을 피하지 못하게 되는 거야.

우리나라는 이 평가에서 점수가 낮아. 당뇨병 환자의 병원 입원율이 OECD 회원국 중에 가장 높은 축에 드는 거야. 높은 순서로 세 번째고, 입원율은 OECD 평균의 거의 두 배야. 의료 질이, 적어도 이 지표에서는 바닥권으로 낮은 거지. 십여 년 전 통계에서부터 한결같게 나오는 결과야.

아, 우리나라 의료의 질이 엄청나게 뛰어난 줄 알았는데 실망이라고? 그랬구나. 실은 나도 십 년 전 이 그래프를 처음 보고는 놀랐어. 그때는 지금보다 더 심해서 우리 입원율이 가장 높은 순서로 두 번째였어.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이 평가가 비추는 건 분명 우리 모습이야. 질 높은 의료가 멋진 병원 건물이나 고급 검사 장비에서 나올 리는 없잖아? 의료는 당뇨병 환자가 스스로 관리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해. 그러려면 의사가 환자를 세심하게 살피고 그의 질문에 귀 기울이며 적절하게 조언하고 상담해 줄 수 있어야 해.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외래진료를 받기는 어려워. 사실 3분 안에 그런 진료를 해줄 수 있는 의사는 어디에도 없어.

이것과 비슷한 결과를 보이는 것이 사람들의 주관적인 건강 평가야. 2022년에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겨우 52.4%였어. OECD 평균보다 훨씬 낮고 전체 중에서 바닥권이야. 사람들이 병원에 많이 다니면서도 건강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

이렇게 우리나라 의료에 관해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조금 힘들지? 제도 개선을 위해 할 일이 너무 많다고? 그래, 그렇기는 해. 하지만 과제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것과 다름없어. 더욱이 지금 우리는 함께 알았잖아? 함께 한 발짝을 떼는 것으로 변화가 시작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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