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의 삶과 문화를 스크린을 통해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25일부터 27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극장3에서 열리는 제14회 아랍영화제다.
국내 유일의 아랍권 영화제인 이번 행사는 한국-아랍소사이어티가 주최,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아랍영화제, 영화의전당이 공동 주관하며 외교부와 주한아랍외교단이 후원한다.
서울(아트하우스 모모)을 시작으로 부산(영화의전당), 광주 등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되는 이번 영화제에서는 아랍 사회의 현실과 문화를 담은 다섯 편의 영화를 만나볼 수 있다.
영화제 주제는 ‘아랍의 삶 속으로 한 걸음 더’. 아랍 감독들의 시선을 통해 가족, 여성, 공동체, 종교, 젠더 등 다층적인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소개된다.
개막작은 미라 샤입 감독의 ‘아르제(Arze)’(레바논·이집트, 2023)다. 가족의 유대와 분열을 베이루트의 복잡한 종파 구조 속에 녹여낸 드라마다. 스쿠터를 도난당한 싱글맘과 아들이 이를 찾아 도심을 헤매며 겪는 여정은 종교적 갈등과 가족의 비밀을 드러내는 은유로 이어진다.
이어지는 상영작들도 주목할 만하다.
에리제 세히리 감독의 ‘무화과나무 아래(Under the Fig Trees)’(튀니지 외 5개국, 2022)는 무화과 과수원에서 하루 동안 펼쳐지는 여성들의 소소한 감정과 연대를 그린다. 해당 작품은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선정된 바 있다.
무함마드 사라프 트라야박 감독의 ‘작은 행복(Small Pleasures)’(모로코, 2016)은 유서 깊은 저택을 배경으로 10대 소녀들의 특별한 우정과 그 끝에 놓인 감정의 균열을 전통 노래와 춤으로 화려하게 풀어낸다.
요르단을 배경으로 한 하나디 일리안 감독의 ‘살마의 집(Salma’s Home)’(2022)은 빵을 만들어 생계를 이어가는 여성 세 인물이 살마의 전 남편 장례식을 계기로 한 집에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갈등 끝에 공존을 모색하는 과정을 그린다.
폐막작인 ‘내가 속한 곳은 어디인가(Who Do I Belong To)’(튀니지, 2024)는 극단적 이념이 가족과 공동체에 남긴 상흔을 조명한다. 마르얌 주브르 감독은 예지몽 능력을 지닌 여성 ‘아이샤’를 중심으로, 전쟁과 종교 극단주의 속에서 파괴되는 평범한 삶을 예리하게 담아낸다. 이 작품은 202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아랍 문화를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시네토크도 마련됐다. ‘아르제’, ‘무화과나무 아래’, ‘살마의 집’ 상영 전 남기형 배우와 황병하 조선대 글로벌인문대학 명예교수가 패널로 참여해 작품의 맥락과 문화적 배경에 대해 풍성한 해설을 더할 예정이다.
관람은 무료이며, 1인당 4매까지 예매할 수 있다. 자세한 일정과 상영 정보는 ACC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상욱 전당장은 “서아시아 문화의 섬세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아랍 세계의 다층적인 삶과 이야기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