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장윤규의 ‘미로’ 걷기, 수행과 일탈 사이

2025-08-04

미로(迷路). 여기저기 갈래 져서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을 말합니다. 혹자는 그 이름만 들어도 그곳에 갇혀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또 다른 혹자는 출구를 찾아낼 의욕에 쾌감마저 느낍니다. 서울 덕수궁길 두손갤러리에서 건축가 장윤규(운생동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국민대 교수)의 개인전 ‘미로를 걷다(Walking Labyrinth)’(9월 6일까지)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관람객은 숱한 미로 그림을 보게 되는데요, 무심하게 작품을 보다가 ‘과연 저 안에 출구가 있을까’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서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숱한 사람이 그 미로를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윤규는 지난해 전시에서 삶과 관계에 대한 생각을 산수화(山水?)로 표현한 ‘인간산수’ 연작을 먼저 선보였습니다. ‘인간산수’는 멀리서 보면 풍경화인데, 가까이 가서 보면 그 풍경을 이룬 게 사실은 인간 군상(群像)임을 묘사한 독특한 회화였습니다. 이번 전시엔 ‘미로’ 시리즈를 더했고, 가로 길이 6m에 이르는 ‘일월오봉도’도 함께 선보였습니다. 구불구불 선과 면이 사람으로 채워진 일월오봉도, 상상이 되나요? 이른바 ‘왕의 그림’으로 알려진 일월오봉도가 그의 손을 거쳐 ‘만민(萬民)의 그림’으로 재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왜 미로일까요? 그는 “인간은 풍경 속에 살며 길을 묻는 존재”라며 “미로는 탐색하는 길이며, 감정과 기억, 상실과 희망이 얽히고 반복되는 인간 내면의 지형도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프랑스 샤르트르 성당을 찾은 순례자들은 미로를 걸으며 명상하고 기도한다. 미로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새벽화’라고 부릅니다. 지난 10년 동안 낮엔 본업인 설계 일을 하고, 잠을 줄여가며 매일 새벽 3~4시까지 수행하는 마음으로 그렸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입니다. 큰 예산 투입과 협업이 기본인 건축 설계 일과는 별개로 그가 새벽에 그리는 작업은 자유와 일탈이자 수행이 아니었을까요. 고요함에 묻혀 자신의 상상 영역을 무한대 공간으로 확장해보는 순간이었을 테고요. 그의 그림을 보고 나면 건축에서 늘 실험을 시도하고, 갤러리 정미소까지 운영해온 건축가 장윤규가 그리 놀랍지 않습니다.

“성냥갑처럼 생긴 건물은 짓고 싶지 않았죠.” 지금 봐도 파격적이고 대담한 서울 대치동 복합문화공간 ‘크링’(2008)의 디자인은 그런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요즘 폭염 한가운데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받는 ‘한내 지혜의 숲’(2017), 오동숲속도서관(2023)도 그의 대표작이고요. 올해 개관한 서울 연극창작센터, 광양 포스코 뮤지엄도 ‘새벽화가’의 또 다른 결실입니다. 오늘도 그는 건축과 예술 사이를 넘나들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에게 미로는 ‘탐색하는 길’ ‘치유의 길’인 게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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