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탄핵소추안이 폐기되는 걸 보며 해외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뭔지 고심했어요. 그렇게 찾은 게 SNS, 웹사이트를 활용한 연대예요.”
지난 21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하버드대 교육학과 김우희(29)씨는 ‘해외 한인 유학생·연구자 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 결성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김씨가 옥스퍼드대에서 재학 중인 친구와 1차 탄핵 소추안 폐기 직후 만든 네트워크는 12·3 비상계엄 이후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네트워크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을 개설해 해외에서 이뤄지는 12·3 비상계엄 규탄 및 탄핵 촉구 집회 소식도 공유했다. 지난 20일 기준, 네트워크에 참여한 한인 유학생·연구자 수는 21개국 164개 대학 356명에 달한다.
네트워크는 해외 연구자, 유학생이 연대할 수 있게 돕는 ‘온라인 허브’ 역할도 한다. 김씨는 비상계엄에 관해 소통할 수 있는 200여명 규모 오픈 채팅방을 만들었다. 김씨는 “서로 다른 대학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며 “해외에서 뜻 맞는 사람을 찾기 어려웠던 분들이 오픈 채팅방에서 만나 집회도 열었다”고 말했다.
손가락으로 지킨 민주주의
12·3 비상계엄 이후 시민들이 온라인에서 연대하며 민주주의를 가꿔가는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다. ‘손가락 민주주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정당, 단체 소속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뤄지는 점이 특징이다. 김윤태 고려대 공공정책대 교수는 “정당, 노조 등에서 하향식으로 동원하던 과거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SNS를 통해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시민의 상향식 연대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전 세계에서 보기 힘든 현상이었다”고 분석했다.
‘손가락 민주주의’를 이끈 이들은 “오프라인으로 거리에 못 나가도 마음은 같기 때문에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말했다. 멜버른 한인시국선언팀은 지난 14일 윤석열 탄핵 촉구 온라인 피케팅 집회를 열었다. 멜버른 한인시국선언 미디어 대응팀은 “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인 것”이라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온라인 집회를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줌(zoom)으로 열린 온라인 집회에 참석한 멜버른 한인 6명은 각자 프린트한 피켓을 들고 12·3 비상계엄에 관한 심경을 밝혔다. 한 참석자는 “작은 목소리라도 지속해서 내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집회 참여 매뉴얼을 제작해 온라인상에 공개한 학생도 있었다. 홍익대 학내단체 ‘미대의외침’ 이시온(25) 위원장은 회원들과 6~7일 밤새 집회 대비 매뉴얼을 만들었다. 집회 준비물뿐만 아니라 맞불 집회 충돌 대처법 등 각종 팁을 담은 매뉴얼은 엑스(X·옛 트위터)에서 조회 수 8만회를 기록했다. 이 위원장은 “시민과 상호작용하며 매뉴얼을 수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계엄 국면에서 두 얼굴이 나타난 SNS의 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는 부정선거 음모론 등 편견을 강화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신속하게 의사를 결집하고 퍼뜨리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며 “SNS는 알고리즘 등으로 편향성을 띠기 쉽기 때문에 오프라인에서의 민주주의 교육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