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실업축구(WK리그)가 한국여자축구연맹이 리그 운영을 포기하면서 존폐 기로에 섰다.
여자연맹 오규상 회장은 내년부터 WK리그 운영을 포기한다고 최근 선언했다. 오 회장은 12월 말 또는 내년 1월 초 여자연맹회장 선거에서 5선에 도전한다. 현재로서는 오 회장에 맞설 후보가 없다. 단독 후보면 무투표로 당선된다.
오 회장이 당선돼 ‘5기 집행부’를 꾸린다면, WK리그와 연맹을 분리하는 조처에 나서리라 전망된다. 내년 1월 8일 대한축구협회장 선거를 이용해 차기 협회장에게 WK리그 운영을 완전히 넘기려는 의도로 읽힌다. 단독 후보든, 투표를 통해서든, 오 회장이 당선된다면 여자축구계로부터 리그 운영을 포기한 회장도 좋다는 동의를 받는 꼴이 된다.
16년 동안 WK리그는 풍전등화다. 현재 리그는 8개 팀 체제다. 명문으로 꼽힌 이천 대교가 2017년 해체됐고 연맹이 창녕WFC를 자체 예산으로 운영해왔다. 리그 및 구단 재정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없다. 가시화된 자체 수익 모델도 없다. 연맹 사무국 인원은 4명뿐 인데다, 전문성과 의욕 모두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는다. 구단 관중 동원력, 자체 마케팅 능력도 약하다. 이번 시즌 리그 한 경기 평균 관중은 261명이다. 공교롭게도 최다 관중팀은 군국체육부대인 문경상무로 455명이다.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수원FC 평균관중도 183명에 불과하다.
누가 WK리그를 운영하든 적잖은 돈을 쏟아부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회수가 불가능한 환경이라 적잖은 기간 돈을 쓰기만 해야 한다. 공식 파트너 협약 기간이 조만간 끝나는 신세계 그룹이 후원 계약을 연장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다른 기업도 현재로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재미 여성 사업가 미셸 강이 미국여자축구발전을 위해 3000만 달러(약 418억원)를 투자하겠다고 최근 밝힌 것은 미국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일단 WK리그는 급한 불을 끄고 봐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장기적 발전 방안이 없었다는 걸 지금 지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우선, 리그를 살리는 쪽에 힘을 쏟고 너무 늦지 않게 중장기적인 자생방안을 마련하는 데 역량을 쏟아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축구를 책임지는 대한축구협회가 선봉에 서야 한다. 올해 협회 예산 1800억원 정도다. 그중 천안축구센터 건립비용을 빼면 1000억원 정도가 경상비다. 각급 대표팀 운영비 277억원, 국내 대회 운영비 176억원, 기술발전 및 지도자·심판 육성비 125억원, 생활축구 육성비 97억원 등이다. 여러곳에 들어가는 예산을 적잖게 줄여야만 여자축구 투자비를 마련할 수 있다. 돈 쓸 곳이 많은 협회가 마련하는 비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여자축구발전에 들어가는 체육진흥기금 예산을 늘릴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오직 정부뿐이다.
협회, 정부와 함께 WK리그를 살릴 기업이 나올 수 있을까. CEO가 남자든 여자든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있다면, 협회와 정부는 기업이 흥미를 느낄만한 지원책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 전현직 여자축구 스타들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무조건 도와달라는 식으로 미디어를 통해 읍소하는 것으로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 선수, 지도자들이 후원 기업 물색, 크라우드 펀딩 조성 등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동시에, 현실적으로 실현가능성한 비전을 제시하며 협회와 정부, 정치권도 열심히 설득해야 한다.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도와주겠다” “투자하겠다”는 사람들도 나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