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의 콘셉트에 대한 누군가의 비판을 온라인에서 읽은 적이 있다. 런베뮤는 메뉴판을 영어로만 적고 영국 여왕 관련 상품을 팔 만큼 콘셉트에 ‘진심’인데 정확성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가령 런베뮤는 ‘팁 박스’를 놓지만, 정작 영국엔 팁 문화가 없다고 한다. 베이글은 유대인이 미국 뉴욕에서 유행시킨 음식이라 런던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고도 글쓴이는 덧붙였다. 조금 웃기긴 했지만, 그 자체로 큰 문제인가 싶었다.
사망 직전 ‘주 80시간’ 수준의 과로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난 20대 노동자 이야기를 듣고 나서, 그때 그 글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콘셉트가 어쨌든 런베뮤는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뜨거운 ‘핫플’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저 겉만 번지르르했다.
과로사 의혹 보도 이후 ‘쪼개기 계약’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직원들의 폭로로 불거졌다. 경쾌한 매장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직원들에게 과도한 감정노동을 강요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사측이 산재를 신청한 유족에게 “양심껏 행동하라”며 겁박한 사실도 드러났다. 여론이 악화하고서야 사측은 장문의 사과문을 게시했다.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런베뮤는 베이글처럼 겉은 윤기 나고 탐스럽지만, 안쪽엔 구멍이 뻥 뚫린 공허한 핫플일 뿐이었다. 껍데기는 화려하지만, 내실은 조악했던 콘셉트처럼. 어떤 면에서는 참 일관된 기업이었다. 텅 빈 그 구멍을 채우려고 사람을 계속 갈아넣었던 걸까.
그 점에서 런베뮤는 얼마나 ‘한국적’인가. 런베뮤 바깥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풍경을 계속 만난다. 화려한 외견과 비참한 노동의 대비는 한국사회 곳곳에서 너무도 선명하다. K팝은 날아오르지만, 그 뒤엔 심각한 착취가 있다. ‘반도체 강국 도약’이라는 슬로건 아래 수많은 노동자가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플랫폼 기업의 반짝이는 ‘혁신’은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이들을 새벽도 밤낮도 없이 굴려댄 결과다.
주요국 정상이 집결하고 황금 금관이 등장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비슷해 보였다. 한국의 ‘실용외교’가 눈부신 성과를 냈다는 상찬이 넘쳐났다.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은 26만개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풀었다. APEC을 앞두고 진행된 폭력적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으로 스물다섯 살 베트남 노동자가 숨진 이야기는 뒤로 밀려났다. 그는 단속을 피해 높은 곳에 숨어 친구에게 “숨이 막힌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끝내 추락했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일단 화려한 옷을 걸치면 많은 것이 해결되리라고 믿으며 달려왔다.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멋진 옷 아래에는 가혹한 채찍질이 남긴 흉터들이 여전히 곳곳에 깊다. 밖으로 빛나고 안으로 곪는 나라와 간판은 멋지지만, 직원은 고통스러운 빵집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우린 모두 다르게 태어났는데, 왜 똑같아지길 바라나요?” 런베뮤의 슬로건이다. 만화 <송곳>의 대사로 답하고 싶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다름을 외치던 빵집은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비극이 일어났던 다른 기업들을. 그리고 한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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