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아이, 노벨문학상 한강

2024-10-24

‘열차가 멈추었다.…… 여수, 마침내 그곳의 승강장에 내려서자 바람은 오래 기다렸다는 듯이 내 어깨를 혹독하게 후려쳤다. 무겁게 가라앉은 잿빛 하늘은 눈부신 얼음 조각 같은 빗발들을 내 악문 입술을 향해 내리꽂았다. 키득키득, 한옥식 역사의 검푸른 기와지붕 위로 자흔의 아련한 웃음소리가 폭우와 함께 넘쳐흐르고 있었다.’ 이번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강의 소설 ‘여수의 사랑’의 마지막 문단이다.

‘……사방이 너무 캄캄해서 내가 그렇게 말을 했다이. 금방이라도 어둠 속에서 군인들이 나타날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이라다가 남은 아들까장 잃어버릴 것 같아서 그렇게 말을 했다이.…… 그렇게 너를 영영 잃어버렸다이.……’ 5·18 광주항쟁 사건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6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지난 10일 발표된 노벨상의 꽃으로 불리는 121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우리 대한민국의 54세 여성소설가 한강이다. 여성소설가로는 열여덟번째이며 아시아 여성작가로는 최초이다. 왕대밭에서 왕대가 난다고 했던가. 영화 ‘아재 아재 바라아재’의 원작자인 한승원 작가가 아버지다. 참으로 놀랍고 기쁘다. 내 생에 대한민국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만나게 되다니, 마치 내가 노벨상을 받은 것처럼 흥분된다.

이제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들을 그녀의 모국어인 우리 한국어본 원어 그대로 번역 없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k-pop, k-drama, k-food에 이어 이제 k-문학까지, 지금 세계인들은 한국인들이 생산해 내는 k-문화에 관심을 갖고 열광하고 있다.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는 말한다. 한강의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는 내 딸이지만 칭찬받을 만하고 질투가 날 정도라고. 어려서부터 컴컴한 방에 혼자 들어앉아 공상하기를 좋아했던 효녀 딸이라고. 한강은 글쓰기와 삶, 매사가 맑고 진실하고 진심이다. 한강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갈대숲 사이에서 얼굴을 내민 하얀 들꽃 같은 작가이다. 세상 만물을 대하는 영혼이 그처럼 맑으니 그리고 진심이니 소설마다 마지막 메시지가 선하다.

그래서 잔잔하게 가슴을 울리고 소리없이 눈물이 흐르고 한 문장 안에도 수많은 비유와 함축과 은유의 기교들이 호화롭고 신화적이다. 현미경 만큼이나 화상도가 뛰어난 카메라의 눈으로 묘사된 그녀의 소설 속 장면들은 오래도록 영상으로 펼쳐지며 매혹적으로 기억된다. 아버지 한승원 작가의 칭찬처럼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받기에 충분하고 스웨덴 노벨상 심사위원회인 한림원이 세계적인 사고를 친 것이다.

한강의 시적이며 아름다운 환상적인 소설문체들은 그리고 그 선한 작가의 심성은 참혹한 광주 5·18 사건이나 제주 4·3 사건을 지극히 단순히 가해자에 대한 고발성 폭로가 아닌 피해자들이 화자가 되어 때로는 죽은 이들의 혼령이 화자가 되어 무자비하게 살해당하는 참혹한 상황에서도 모자간에 친구 간에 동지들 간에 서로가 서로를 염려하고 가슴 안에 품는 따뜻한 원초적인 인간애를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이 혼을 담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바로 그 따스한 한국적인 한과 정이 맑은 심곡의 계곡물처럼 흐르는 그 아름다운 문체에 매료되어 동방의 등불 동쪽 끝 아시아의 여성작가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이다. 이는 실로 대대로 역사의 한 줄로 기록될 우리 대한민국의 경사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소설 『소년이 온다』의 첫 문장이다. 그리고 뒤이어 비가 쏟아진다. ‘여수,……빗물이 객실 차창에 여러 줄기의 빗금을 내리긋고 있었다.……’ 소설 「여수의 사랑」의 첫 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우연일까 모두 비가 내리거나 비가 올 것 같다며 소설이 시작되고 있다.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첫 문장이다.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은 성근 눈이 내리면서 그 암울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소설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그녀의 소설들은 마치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듯 독자들은 카메라의 눈이 되어 그 소설 속 주인공들의 영혼에 빙의된 채 바쁘게 뒤따라가며 히말라야산만큼이나 높고 험한 산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와 버들가지 늘어진 냇물을 지나 강물로 흘러 큰 바다로 쏟아져 내려가는 그 거침없는 시퍼런 물줄기처럼 단 한 줄의 문장도 눈살에 걸리지 않고 한순간에 흘러간다.

그녀의 소설들을 밑줄까지 그어가며 밤을 새워 읽었다. 책을 읽다가 뒷장면이 궁금해서 식사 시간을 놓쳤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밤이 깊어 가고 날도 추워지고 새벽이 오고 잠에 들지 못해도 힘들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경제활동을 못하는 아버지 대신 박봉의 교사 월급으로 동생들을 대학까지 보내며 부모역할을 했던 인성도 바른 작가 한승원,

그 바른 소설가 한승원 작가의 딸로 태어나 방 안 가득한 책들 속에서, 사각사각 타닥타닥 깊은 밤 그 아버지의 글 쓰는 소리를 천상의 음악소리처럼 들으며 영혼까지도 이미 천재적인 작가로 무장되어 있었던 한강. 사색하며 걷기를 좋아하고 마치 숙명인양 30여 년 오로지 소설 쓰기에만 진심이었던 한강. 시커먼 어둠 같은 잔인함 속에서도 원초적으로 내재 된 인간의 선한 면들을 섬세하게 살려내려 애쓰는 선한 작가 한강.

스웨덴의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은 이 선한 작가, 감성천재, 대한민국의 소설가 한강을 121번째로, 아시아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이는 모든 예술가들의 첫째 덕목인 선함의 승리이다.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자랑이며 이 나라 문학계의 영광인 소설가 한강에게 진심으로 큰 박수를 보낸다.

정영신 <前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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