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아들 김재호 “롯데 유니폼이 원기옥, 다시 태어나면 무조건 야구”

2025-11-09

이날 3오버파를 쳤는데도 김재호(43)는 약속된 인터뷰 장소에 웃으며 나타났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투어 최병복 경기위원은 "선수들 대부분이 에티켓이 좋지만, 성적이 나쁠 때도 좋은 선수는 많지 않다. 김재호는 상황이 어떻더라도 항상 신사"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그랬다. 외모나 성품 모두 그의 아버지 김용희(70) 롯데 2군 감독을 빼닮았다.

지난 2일 렉서스 마스터스에서 투어 데뷔 17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김재호를 투어 챔피언십이 열리는 제주 테디밸리 골프장에서 만났다. 우승 후 '미스터 롯데'로 불리는 아버지의 등번호 99번 롯데 유니폼을 입고 나와 화제가 됐던 그는 소탈하고 솔직했다.

―우승 후 아버님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그냥 수고했다, 잘했다 뭐 그 정도예요. 부산 사람들은 그렇게 밖에 이야기 안 하니까요." (웃음)

―아버지를 많이 닮았어요.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아버지 고등학교 때 사진이랑 제 고등학교 때 사진을 보면 똑같더라고요."

―대스타의 아들이라 힘든 점도 많았을 텐데요.

"처음에는 많이 불편했어요. 동네에서 어르신을 뵈면 다 인사해야 하고, 가족끼리 외식 중 술 취한 사람들이 시비 거는 경우도 많았고요. 친구들 중에도 질투하는 애들이 있었어요. 나이가 들고 보니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골프 칠 수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부터는 엄청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오히려 자신 있게 누구 아들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니죠."

―아버지가 올스타전에서 만루 홈런을 친 프로야구 원년(1982년)에 태어났는데, 아버지 야구에 대한 기억이 많나요.

"아버지 경기를 직접 본 게 한두 장면밖에 없어요. 허리가 안 좋아 일찍 은퇴하셨으니까요. 지금 같으면 치료할 수 있었을 텐데."

―아버지가 야구 절대 하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왜 그러셨나요.

"할머니가 선배들한테 맞는다고 반대하셨고요. 아버지는 제 키가 너무 작아서 그러신 것 같아요. 고등학교 입학할 때 158cm 정도밖에 안 됐으니까요."

―아버지를 많이 닮았는데, 키(181cm)는 왜 좀 늦게 컸나요.

"아버지는 운동한다고 할아버지께서 아침마다 소고기 한 근씩 먹여서 보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아침을 잘 못 먹어요. 아직도 아침 먹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골프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했어요. 그전에는 그냥 아빠 연습장 갈 때 따라가서 몇 번 쳐보고 그 정도였죠. 다시 태어나면 무조건 야구 선수 할 거예요. 야구 적성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요. 공 던지는 것도, 치는 것도 다요. 그리고 부모님이 엘리트이시니까 나도 좋은 교육을 받았을 것 같아요. 골프도 엄청 잘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준은 하고 있잖아요. 이 정도면 야구했다면 1군에는 계속 있다가 FA 한두 번 하지 않았을까요."

―100억 정도 벌었겠네요.

"그만큼은 아니겠지만... 아버지가 야구 못하게 한 거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지나간 건 지나간 거라 생각해야죠."

―우승경쟁하던 3라운드 16번 홀에서 롯데 유니폼을 입고 나온 게 화제였는데, 33년간 우승 못한 팀 유니폼을 입고 나오는 거 괜찮았나요.

"롯데 응원하는 마음으로 한 거죠. 저는 응원이 만화 드래곤볼의 원기옥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 기운이 모여야 터뜨린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제가 그 퍼포먼스를 해서 롯데 팬들이 저에게 원기옥을 모아주셔서 우승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요."

―작년 팔꿈치 부상 때문에 1년 쉰 게 오히려 우승을 위한 전환점이 됐을까요.

"처음 다쳤을 때는 보름 정도 거의 식음을 전폐했는데, 생각해 보니 오히려 안식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팔 다쳐서 레슨도 못하니까 가족들과 놀았어요. 대출을 많이 받아야 할 정도로 돈 없는 거 빼고는 다 좋았어요. 그렇게 우승해서 큰 산을 넘었죠."

―동료들이 다 좋아하고, 우승 후 축하하는 선수들이 많던데, 사람을 어떻게 대하나요.

"선배랍시고 후배들에게 까탈스럽게 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저는 다른 사람 단점보다 장점이 먼저 보여요.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아버지도 야구계의 신사라는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영향이 있었나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과 문제가 생기면 '너는 잘못한 게 없나 생각해 봐라'고 하시더라고요."

―경기 템포도 엄청 빠르고, 경기가 늦어지면 가장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시간을 맞추려 하는 선수라는 칭찬이 들려요.

"결정했으면 바로 쳐요. 생각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불필요한 게 보이고 겁도 나는 것 같아서요. 작년 다치기 전에는 안 뛰었어요. '저는 경기 속도가 빠르고 다른 애들 때문에 느린 거니까 저는 아닙니다' 이러고 그냥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는데, 작년 다치면서 러닝을 많이 해서 뛰는 게 안 힘들어 뛰고 있어요."

―스포츠에서는 '착한 사람은 꼴찌다, 우승 못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좀 착한 선수들이 승부욕이 조금 적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저도 승부욕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요. 자기밖에 모르는 애들이 승부욕이 강하니까 그런 애들이 빨리 성공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승부욕 강한 선수랑 함께 치면 어떤가요.

"이제는 별로 신경 안 써요. 그냥 내 것만 하면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신경이 쓰였나 보네요.

"공을 안 치니까요. 너무 천천히 경기하는 데다 확인할 거 한두 번, 세 번 하고 그러니까 짜증 나고. 전 마음이 약해서 불평도 못하고."

김재호가 첫 우승을 자축하며 투어 챔피언십 대회장에 들여 놓은 커피 트럭. 성호준 기자

김재호가 첫 우승을 자축하며 투어 챔피언십 대회장에 들여 놓은 커피 트럭. 성호준 기자

―마음이 착해서 우승을 못했다는 생각 했나요.

"착한 지는 잘 모르겠고요. 승부욕이 없다는 건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어요. 승부욕이 있는 애들이 연습도 더 많이 하게 되니까요."

―클럽 집어던지고 이런 것도 필요한 건가요.

"'내가 너한테는 반드시 이기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자 하고 연습해본 적도 있는데 오히려 더 안 되더라고요. 왜 못했는지 복기하고 확실하게 고치고. 이런 끈기, 노력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동료 중에 친한 선수들은 누구인가요.

"문경준, 권성열, 이태희 선수랑 친하게 다니죠. 올해 시드가 조금 간당간당했거든요. 우승하기 전에 69등이었으니까. 그래서 혼자 끙끙 앓고 있으니까 문경준 프로랑 이태희 프로가 소고기를 사주더라고요. 제가 소고기 먹으면 잘 친다는 징크스가 있으니까."

―그 소고기가 아버지가 어릴 때 아침에 드시던 그 소고기와 연결되는 건가요.

"그러게요."

제주=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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