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한 주택 정리 세일에서 150파운드(약 28만원)에 거래된 그림이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그린 진품으로 밝혀졌다.
2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익명을 요구한 골동품상인 A씨는 지난 2023년 케임브리지의 한 주택 정리 세일에서 독특한 색감의 수채화 그림을 발견하고 경매에 참가했다. 그림의 오른쪽 하단에 달리의 서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A씨는 진품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경매에 참가했다. 그가 평소 즐겨보던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 '페이크 오어 포춘?'(Fake or Fortune?)에서 예상치도 못하게 진품인 예술품이 종종 발견됐기 때문이다.
다행이 다른 경매 참가자들은 해당 그림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판매자 역시 그림이 인기가 없어 최저가를 설정하지도 않았다. A씨의 경쟁자는 단 한 사람이었고, 상대 역시 낮은 가격을 제시해 A씨는 150파운드만으로 그림을 구입하게 됐다.
이 그림의 뒷면에는 1990년대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바 있다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에 A씨는 소더비 경매 카탈로그를 뒤져 이 그림이 달리의 진품으로 거래된 기록을 찾아냈다. 이후 그림을 미술 전문가에게 의뢰해 진품이라는 결과를 듣게 됐다.
이 그림은 달리가 1966년 그린 '베키오 술타노'(Vecchio Sultano; 노인 술탄)라는 그림이다. 가로 29cm, 세로98cm 크기로 수채화 물감과 펠트펜으로 작업됐다.
이탈리아 재력가이자 달리의 후원자인 주세페-마라 알바레토 부부는 1963년 달리에게 성경 삽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달리는 자신이 무어 계통이라고 주장하며 중동의 민화 모음집인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 그림을 고집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출판사인 리졸리가 삽화 500점을 묶어 출판할 계획이었으나, 달리가 100점만 완성한 뒤 프로젝트를 중단해 모든 삽화가 출판되지 못했다. 100점 중 50점은 알바레토 부부의 딸(달리의 대녀)이 물려받았다. 나머지 절반은 출판사가 가지고 있었으나 보관 과정에서 분실되거나 손상됐다.
알바레토 가문이 소유한 50점의 삽화는 지난 2014년 출판됐다. 출판 과정에 대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출판되지 못한 50점의 행방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A씨가 구입한 삽화는 출판사가 분실한 삽화 중 하나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오는 10월 23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열리는 셰핀스 아트 앤 디자인(Cheffins Art and Design) 경매에 오른다. 예상 낙찰가는 2만~3만 파운드(약 3700만~5500만원)다.
셰핀스의 미술 전문가 가브리엘 다우니는 “현대 미술계에서 작품의 귀속 정보가 사라지는 일은 매우 드문 일로, 달리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재발견”이라면서 이번 작품에 대해 “수채화 작업을 통해 달리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특이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