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론 등 허위·조작 게시글
유튜브 등 플랫폼서 사실로 확산
사상의 유통을 시장에만 맡길 때
정작 진리와 진짜 자유는 잃게 돼
한 달이 넘었다. 146건 중 단 1건만 삭제됐다. 지난 1월 말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유튜브, 페이스북, X에 올라온 허위·조작정보나 혐오·폭력 조장 게시물을 해당 플랫폼에 신고한 결과다. 페이스북 7건은 신고가 반려됐다. 그 외에 어떤 통보도 받지 못했다.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99명이 체포됐다든지 하는, 허위로 판명됐고 입에 담기도 어려운 콘텐츠들이 여전히 노출돼 있다.
유튜브 등은 게시물 규정이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거대 디지털 플랫폼들은 점점 모니터링에서조차 손을 떼고 있다. 유튜브는 2023년 6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거짓 콘텐츠를 더 삭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미국 대선을 불과 1년여 앞둔 시점이었다.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도 지난 1월 ‘팩트체커’ 정책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용자들이 직접 게시물에 추가 설명을 달 수 있는 ‘커뮤니티 노트’ 기능으로 대체한다고 한다. 일론 머스크에게 인수된 X가 걸어갔던 길과 비슷하다.
“진리와 허위가 맞붙어 논쟁하도록 하라. 자유롭고 공개적인 대결에서 진리가 불리하게 되는 것을 누가 본 일이 있는가. 진리의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최선의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존 밀턴이 쓴 <아레오파지티카>의 경구가 떠오른다. 언론 자유를 다룬 이 고전은 이른바 ‘사상의 공개시장’과 ‘자동조정의 원리’로 알려져 있다. 이미 ‘언론’으로 자리 잡은 거대 플랫폼 역시 ‘진리의 승리’를 믿고 있는 것 같다.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입증되지 않은 가정에 기반한 정치적 생각이라 할지라도,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제대로 된 민주사회의 핵심입니다. 특히나 선거철에는요.” 유튜브가 밝힌 정책 변경 이유다.
현실에서 진리는 패배에 가까운 스코어를 기록 중이다. 상당수 루머들은 당당히 하나의 ‘사실’로 자리 잡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정에서까지 부정선거론이 설파된다. 과거에는 자신의 의견이 소수이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말을 삼갔고 ‘침묵의 나선’을 타고 묻혔다. 지금은 유튜브를 보고, 그 유튜브를 본 서로를 보고, 소리 지르며 더욱 확산한다. 전한길씨처럼 설득된 사람도 생겨난다. 나도 수많은 게시물을 보다 세뇌당할 뻔했다.
물건을 파는 것처럼 사상의 유통을 시장에만 맡겨둔다면, 시장균형에 따라서는 진리가 허위에 패배하는 일도 가능하며 그런 일도 그냥 놔둬야 한다. 그사이 또 다른 ‘시장’에선 누군가가 돈을 번다. 약자를 혐오하고, 폭동과 계엄을 옹호하며, 부정선거론에 열을 올리는 콘텐츠마다 조회 수가 주렁주렁 열리고 수익으로 연결된다.
정작 밀턴은 자유지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당시 진리 탐구와 종교 자유를 제약했던 가톨릭 등에 대해선 관용을 베풀어선 안 된다고 했다. 진리가 허위를 무조건 이긴다면 이런 조치가 필요하다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홍성구 강원대 교수에 따르면 밀턴은 언론 자유가 공동선의 증진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봤고, 공동선을 훼손하는 경우에는 정당하게 억제될 수 있다는 공화주의적 입장에 더 가까웠다. 선과 악을 숙고할 수 있는 시민적 덕성도 기본으로 생각했다.
토머스 제퍼슨도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전제는 모든 시민이 신문을 읽고 토론하며 적극적으로 공적인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퍼슨은 ‘자유’가 덕성을 가진 시민들의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만 좋은 것이며, 사심 어린 당파적인 사람들이 홍수처럼 쏟아내는 거짓말보다 공동체를 더 효과적으로 타락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여겼다(존 네론 <최후의 권리>).
상대편과 토론하고 설득하기보다 자기편을 향해 선동하고 열광하는 데 익숙한 거대 플랫폼과 그를 닮아가는 오늘날의 세계를 밀턴과 제퍼슨이 생각한 건전한 공동체로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플랫폼의 게시물 규제가 ‘사적 검열’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최소한의 외부 감시도 없애는 그들도 믿을 수 없긴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머스크는 왜 메타의 조치를 환영했을까. 아무 말이나 던질 수 있는 소극적 자유를 옹호하는 사이, 우리는 정작 진리와 진짜 자유를 잃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