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쌀보다 고기를 많이 먹게 된 지 3년이 됐다. 이제 구조적으로 쌀 소비가 늘길 바랄 시점은 지났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농업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쌀농사를 다른 분야로 대체해야 하는데 현재 전환이 가장 유력한 분야는 축산업이다. 1990년대 중반과 비교하면 1인당 소고기와 돼지고기 소비량은 약 2배, 닭고기 소비량은 약 2.5배 정도 늘었다. 양적인 성장으로도 괄목할만한 성과지만, 질적인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게 바로 우리 축산물의 수출 실적이다. 2023년 한 해에만 홍콩에 한우 42t이 수출됐고, 베트남에는 국산 닭고기 5만t이 팔렸다. 동남아시아 지역에 판매된 돼지고기 수출량만 8500t이다. 우리 축산업이 자국 내 수요를 충당하는 걸 넘어, 다른 나라에 수출될 정도의 품질 기준도 달성한 것이다.
기준점을 넘은 축산 산업화는 뿌듯한 성과지만, 위생이라는 험난한 과제도 남겼다. 산업화한 축산은 여러모로 과밀(過密) 사육을 택할 수밖에 없는데, 과밀 사육은 위생관리의 난도가 부쩍 상승하기 때문이다. 이미 인류가 쓰는 항생제의 3분의 2가량이 축산업에 사용되는 중인데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조류인플루엔자와 그에 따른 대량 살처분은 익숙한 광경이 됐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구제역과 최근 등장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같은 치명적 질병들도 축산업을 꾸준히 위협하는 중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의 핵심 직군인 ‘농장동물’ 수의사가 계속 준다는 게 문제다.
대한수의사회의 회원 신상신고 조사에 따르면, 2013년에 동물 진료를 직접 수행하는 임상 수의사 숫자는 5300명가량으로 추정된다. 10년여가 지난 2022년에는 이 숫자가 7800명으로 느는데, 증원된 수는 고스란히 ‘반려동물’ 진료 분야에만 집중됐다. 농장동물 진료를 부분적으로라도 수행하는 수의사 수는 같은 기간 되레 200명 가까이 줄기까지 했다. 주로 농촌 지역에서 업무를 수행하고, 반려동물 진료에 비해 ‘박봉’인 농장동물을 기피하는 현상이 통계에 고스란히 잡힌 것이다. 비유하자면 우리 축산업은 동물 판 ‘지역 필수의료’ 붕괴란 큰 악재를 만났다.
안타깝게도 이런 악재의 해법으로 흔히 제시되는 건 ‘증원’이다. 그런데 수의사를 늘려봤자, 그네들이 애써 농장동물 진료에 나설 까닭이 없다. 우악스러운 의대 2000명 증원과 판박이다. 결국 농장동물 수의사를 늘리기 위해선 유인(incentive)을 만들 정도의 재정 투입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농업엔 이미 쌀 직불금이란 시장 적극 개입 사례가 있다. 이런 개입 논리가 타당하다면, 그 재정을 축산 수의사에 쓰는 것도 가능할 테다. 쌀 중심 농업의 탈피가 정해진 흐름이라면, 앞으로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우리 축산 산업을 위한 위생적 토대부터 바로잡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