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은 위반에 대한 범죄 성립 요건 입증이 불충분하며, 하청근로자 사망 건에 대해 지배‧관리 권한이 낮은 원청에 과도한 처벌을 선고한다는 점에서 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망재해 감소 영향력은 미미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인력과 재정이 열악한 소규모 기업 사업주에 처벌이 집중되며 폐업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처법 시행 3년을 앞두고 현재까지의 법원판결 현황과 주요 시사점을 살펴보고 향후 전망을 진단한 보고서를 23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처법이 시행된 2022년 1월 27일 이후 검찰이 기소한 중처법 위반 사건 중 총 31건에 대해 법원판결(1심)이 내려졌다. 그 중 유죄 선고는 실형 4건, 징역형의 집행유예 23건, 벌금형 2건 등 총 29건이었으며, 무죄 선고는 2건이었다.
실형 선고가 내려진 이유는 ▲유사 사고전력, ▲동종전과, ▲안전점검 지적사항 방치 등이었으며, 형량은 대표이사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그 외 법원의 양형은 징역 6월~2년에 집행유예 1~3년, 법인 벌금은 개별 사건에 따라 2000만~20억원을 선고했다.
무죄선고 사례 중 1건은 공사금액 50억 미만으로 중처법 적용대상이 아니었으며, 1건은 의무불이행과 사고발생 간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
29건의 유죄 판결 중 법원이 주로 인용한 중처법 위반 조항은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24건, 시행령 제4조제3호)과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업무수행 평가기준 마련(22건, 시행령 제4조제5호)이 가장 많았고, 1건당 평균 위반 조항 개수는 3.07개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31건 중 전체 사망사고의 절반이 발생하고 있는 건설업 판결이 16건(51.6%)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는 제조업(12건) 기타업종(공동주택관리업 2건, 폐기물처리업 1건) 순이었다.
규모별로는 중소기업(50인~299인)이 27건(87.1%), 중견기업(300인~999인)이 4건(12.9%)으로 나타났으며, 현재까지 대기업(1000인 이상) 사례에 대한 판결은 없었다.(1심 진행 중)
경총은 그동안의 사례에 대해 “중처법의 불명확성과 모호성으로 법 적용 및 해석에 많은 논란이 존재해 법원의 실체적 진실(중처법 위반과 중대산업재해 발생과의 인과관계 입증) 규명이 무엇보다 중요함에도 수사기관의 해석과 판단이 여과 없이 인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처법으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경영책임자 의무 위반의 고의성(기본범죄) ▲의무 위반과 중대산업재해 발생 간의 상당인과관계 ▲의무 위반에 따른 중대재해 발생 예견가능성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돼야 한다고 경총은 지적했다.
특히, 대부분의 판결은 사고원인을 중처법 의무 위반으로 간주했지만, 해당 의무를 경영책임자가 준수했더라면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정도로 상당인과관계를 명확히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사고는 주로 현장의 안전조치 위반, 작업자의 안전수칙 미준수로 발생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중처법 의무 위반이 없더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경총은 “결과적으로 현재까지의 중처법 판결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법원이 엄격한 판단과 논증에 입각해 유무죄 여부를 결정했다기 보다, 인과관계의 인정범위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인과관계의 상당성에 대한 논증을 생략)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경총은 또 하청근로자 사망사건을 다룬 중처법 판결문(14건)을 보면 모두 하청근로자에 대한 모든 안전·보건조치를 원청이 해야한다는 식의 판결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원청(도급인)과 하청(수급인)의 지위와 역할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은 채 유죄를 선고한 것으로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판단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이 원청대표에게만 무거운 형벌(중처법)을 적용하고, 하청대표에 대해 형벌수준이 더 낮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및 형법(업무상과실치사죄)을 적용하는 것은 형벌의 형평성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일부 판결의 경우 의무위반 판단에 있어 문언의 통상적 의미를 벗어난 내용을 포함하는 등 형벌 법규의 엄격 해석 원칙(확장해석금지)에 위배되는 해석도 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형법적용에 있어 문언이 가능한 의미를 크게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행위가 판사의 자의로 처벌될 수 있어 죄형법정주의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이다.
경총은 중소기업에 중처법 기소가 집중되고 유죄 판결로 이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인력·재정이 열악한 소규모 기업 대표의 형사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특히, 지난해 1월부터 중처법이 적용된 영세·소규모 기업(5~49인)은 중처법 이행준비가 부족해 사망사고 발생 시 사업주(대표) 실형 가능성이 매우 높고, 대표 부재 및 벌금 부담이 어려울 시 폐업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지적이다.
정작 중처법 도입의 취지인 사망재해 감소 영향력은 앞으로도 매우 미미할 것이라고 경총은 지적했다.
중처법 제정 이전에도 사망사고는 더디지만 감소하는 추세를 보였으며, 법이 시행된 2022년 전후를 비교하더라도 사고사망자 감소 효과는 매우 미미했다는 설명이다.
이를 근거로 경총은 “모호성 등 논란이 되고 있는 중처법 조문 개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소, 현장의 실질적인 안전관리 수준 향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임우택 경총 안전보건본부장은 “현재까지의 중처법 판결은 검찰의 공소 사실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해 유의미한 내용을 찾기 어려우며, 법률의 불확성도 해소하지 못해 사업장 혼란을 지속시키고, 산재예방에도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처법 시행 3년을 앞둔 시점에서 중처법 이행가능성과 예견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부와 국회가 하루빨리 법령개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