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인터넷신문]나주의 밥상에는 유난히 육고기의 숨결이 짙다. 영산강이 감싼 나주평야에서 생산된 곡식의 부산물과 일소의 필요성으로 축산이 일찍 발달했고, 그 덕분에 곰탕, 수육, 생고기 같은 소고기 음식이 지역의 음식 정체성을 이뤘다. 나주 곰탕이 장시간 끓여내는 인내의 미학이라면, 생고기 비빔밥은 날것의 리듬이 살아 있는 즉흥의 예술이다. 불의 조리 대신 손끝의 감각으로 완성되는 음식, 그것이 나주 생고기 비빔밥이다.
나주 생고기 비빔밥의 그릇에는 도시와 농촌, 익음과 생(生), 절제와 감각이 동시에 존재한다. 가늘게 썬 배와 오이, 당근, 상추 등의 채소 위에 붉은 생고기가 올려진다. 아직 비비지 않은 생고기 비빔밥은 마치 회화의 캔버스 같다. 색과 질감, 구성의 긴장감이 화면 안에 응축되어 있다. 그러나 한 번 비비는 순간, 그 색들은 서로 부딪히며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그 변화는 단순한 혼합이 아니라 예술의 창조 행위와 닮아있다.
나주 생고기 비빔밥은 바실리 칸딘스키(Vassily Kandinsky)의 추상화, 특히 「컴퍼지션 세븐(Composition VII)」을 떠올리게 한다. 칸딘스키의 그림은 음악처럼 흐른다. 색과 선이 부딪히고, 분리된 형태들이 리듬을 타며 하나의 감정으로 수렴된다. 나주 생고기 비빔밥의 붉은 고기와 계란 노른자, 초록 채소, 흰 밥알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회화적 추상미다. 각각의 재료는 명확한 색의 음표이며, 숟가락의 움직임은 붓질이다. 비빔의 순간은 ‘형태의 해체’를 통해 ‘감각의 재조합’을 완성한다.
칸딘스키가 색채로 음악을 표현했다면, 나주 생고기 비빔밥은 맛으로 색을 연주한다. 붉은 생고기의 단백한 감촉은 트럼펫의 선명한 음처럼 강렬하고, 참기름의 향은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처럼 깊다. 배의 아삭한 식감은 클라리넷의 밝은 울림을 닮았고, 고추장의 매운맛은 재즈의 드럼 리듬처럼 비트감이 있다. 한입 한입이 다른 화음을 이루며, 그 맛은 ‘미각의 추상화’로 완성된다.
이러한 감각의 충돌과 조화는 음악적으로 보면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의 『봄의 제전(The Rite of Spring)』과 닮아 있다. 이 작품은 20세기 음악의 혁명이라 불린다. 기존의 질서정연한 선율을 깨고, 원시적 리듬과 불규칙한 박동으로 ‘생명의 폭발’을 표현했다. 나주 생고기 비빔밥도 마찬가지다. 익혀 정제된 음식의 질서를 거부하고, 날것의 고기로 생의 에너지를 드러낸다. 불규칙한 리듬과 강렬한 색채, 본능적인 감각이 그릇 안에서 살아 숨 쉰다.
『봄의 제전』의 시작처럼, 이 음식도 조용히 등장하지만 한입 후에는 감각이 폭발한다. 고추장의 매운 리듬, 생고기의 부드러운 선율, 배의 청량한 타악, 참기름의 여운이 서로 얽히며 불협화음 속의 조화를 만든다. 맛의 층위가 높아지며 미각이 각성하는 순간, 우리는 문명 이전의 본능적 감각을 느낀다. 그것은 조리된 완벽함이 아닌, 생명의 진동에서 비롯된 자유의 음악이다.
나주의 생고기 비빔밥이 특별한 이유는, 그 안에 지역의 역사와 인간의 본능이 함께 녹아 있기 때문이다. 나주는 평야가 넓어 예로부터 축산이 발달했고, 소고기 문화의 중심지였다. 곰탕과 생고기, 수육은 단순히 식사 메뉴가 아니라 삶의 서사다. 이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생고기 비빔밥은 ‘익힘’보다 ‘날것’을 선택한 대담한 예술이다. 생명력의 원천을 그대로 표현한 음식이자, 한 도시의 기질이 투영된 회화적 작품이다.
또한 나주 생고기 비빔밥에는 ‘즉흥의 미학’이 살아 있다. 먹는 사람마다 고추장의 양, 비비는 속도, 손의 힘이 다르다. 그날의 기분과 식욕, 온도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이는 정해진 악보를 벗어나 즉흥 연주를 이어가는 재즈의 태도와도 같다. 나주 생고기 비빔밥은 레시피의 예술이 아니라 감각의 예술, 기술이 아니라 감정의 표현이다.
색과 리듬, 감정의 파동이 교차하는 한 그릇. 그것이 나주 생고기 비빔밥의 본질이다. 칸딘스키가 색으로 마음의 울림을 그렸다면, 스트라빈스키는 소리로 생명의 폭발을 연주했다. 나주의 생고기 비빔밥은 그 둘의 미학을 동시에 품는다. 색이 곧 맛이 되고, 맛이 곧 리듬이 되는 감각의 종합예술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익숙한 밥 한 그릇을 넘어 인간의 본능과 예술의 감정을 함께 경험한다. 한 숟가락의 생고기 비빔밥 속에는 그림이 있고, 음악이 있으며, 삶이 있다. 그 붉은 빛은 생의 리듬이고, 비비는 손끝은 연주의 순간이다. 그리고 그 모든 감각이 입안에서 어우러질 때, 나주 생고기 비빔밥은 미각으로 완성된 칸딘스키의 회화이자, 입안에서 연주되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 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전라도 호남선 음식의 적자, 나주밥상. 세오와 이재.
허북구. 2025. 나주 곰탕의 풍미와 수묵화의 여운.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14).
허북구. 2025. 나주 곰탕, 영화 시네마 천국을 닮은 맛.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13).
허북구. 2025. 나주 곰탕의 풍미와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