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러맨’(9일 개봉)은 영국의 세계적인 뮤지션 로비 윌리엄스(51)의 삶을 다룬 뮤지컬 영화다.
전기 영화 주인공이 되기엔 이른 나이로 보이지만, 사실 그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아찔하고 굴곡 진 삶을 살아왔다.
로비 윌리엄스는 '영국의 국민 가수'로 불린다. 90년대 인기 보이그룹 '테이크 댓'의 막내 멤버로 데뷔한 뒤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솔로 가수가 됐다. 8500만장의 앨범 판매 기록, 브릿 어워즈 18회 수상, 하루 최다 티켓 판매 기록(2006년 월드투어, 160만장) 등이 이를 증명한다. 테이크 댓 시절 멤버들과의 불화와 돌출 행동 탓에 ‘악동’ 이미지가 강하지만, 타고 난 끼와 무대 장악력으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엔터테이너’란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영화는 화려한 조명 아래 빛나는 스타 로비 윌리엄스보다는, 자기 혐오와 무대 공포증, 마약·알콜 중독에 빠진 불안한 한 인간의 내면에 더 큰 비중을 둔다. “내 경력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로비 윌리엄스의 의도대로다. 그는 각본에도 참여했다.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주인공 로비 윌리엄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침팬지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쇼맨’(2017)을 연출한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의 이같은 시도는 “나는 무대에서 원숭이처럼 춤을 췄다. 내 인생은 안전벨트 없이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는 로비 윌리엄스의 고백에서 비롯됐다.
'노래하는 침팬지 스타'라는 전례없는 캐릭터를 만든 건, '아바타'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혁명적 비주얼을 구현해낸 웨타 FX다. 배우 조노 데이비스의 모션 캡처 연기와 로비 윌리엄스의 목소리 연기로 CG(컴퓨터 그래픽) 침팬지를 만들어냈다. ‘혹성탈출’ 시리즈에서 여러 유인원을 만들어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혁신적인 시도 덕분에 영화는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각효과상 후보에 올랐지만, 침팬지가 주인공인 전기 영화에 이물감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법 하다.


영화는 로비 윌리엄스의 전설적인 넵워스 공연(2003)을 실감나게 재현하고, 가수 니콜 애플턴(레이첼 반노)과의 첫 만남을 요트 위의 로맨틱한 춤으로 그려내지만, 가장 압도적인 대목은 ‘록 디제이(Rock DJ)’ 퍼포먼스다.
좀처럼 촬영 허가가 나지 않는 런던 리젠트 스트리트에서 로비 윌리엄스를 포함한 테이크 댓의 다섯 멤버들은 피아노 위에서 춤추고, 시티투어 버스 2층에 올라타는 등 거리를 스테이지처럼 누빈다.

500명과 함께 한 군무 장면은 뮤지컬 영화 ‘라라랜드’(2016)에서 LA 고속도로의 교통 체증에 갇힌 운전자들이 춤을 추는 장면 이상의 감흥을 안겨준다. 촬영 허가를 받기까지 1년 반이 걸렸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로 촬영이 5개월 뒤로 연기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완성된 신을 보면 감독이 현장 촬영을 고집한 이유를 알게 된다.
마이클 감독은 이 장면에 대해 “인생에서 가장 대단한 경험”이라 말했고, 로비 윌리엄스 또한 “내 솔로곡 ‘록 디제이’가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처럼 느껴졌다”고 감탄했다. 영화에는 슬픔과 상실에 대한 노래 ‘필(Feel)’, 언제나 자신의 편이었던 할머니 베티를 추모하는 ‘앤젤스(Angels)’ 등 13곡의 OST가 삽입됐는데, 특히 로비 윌리엄스가 부르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My Way)’는 자신의 인생을 함축해 보여주는 듯 하다.
무대가 두려워 마약에 빠지는 등 일탈하기도 했지만, 오랜 꿈이었던 스타가 되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홀로 싸우고 버텨내야 했던 험난한 여정 말이다. 로비 윌리엄스는 무대에서 아버지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르며, 자기 혐오와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던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아버지와도 화해를 이뤄낸다. 내면의 고통을 극복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노래이자 영화 제목인 'Better Man(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간다.
로비 윌리엄스는 이 영화를 위해 ‘포비든 로드(Forbidden Road)’란 곡을 만들었다. “어떤 형태로든 상실감, 후회, 자기 혐오를 헤쳐나가고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만든, 따뜻한 포옹 같은 노래”라고 그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