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팩보다 뜨거운 여름 소설

2025-01-13

한파가 절정에 달한 이즈음 추위를 잊는 좋은 방법의 하나는 ‘여름 소설’을 읽는 것이다. 보수적인 아일랜드에서 여성의 욕망에 대한 글을 써온 에드나 오브라이언(1930~2024)은 첫 책부터 출간금지를 당하며 찬사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소설가인 남편은 글을 쓰지 말라고 강권했는데, 이혼소송 당시 양육권을 뺏기 위해 법정에 제출한 소설이 『8월은 악마의 달』이다. 남편은 패소했고 에드나는 지난해 93세로 타계할 때까지 수많은 작품을 줄기차게 썼다.

읽어보니 왜 문제작이 되었는지 알 것 같다. 스물여덟의 이혼녀 엘린은 남편이 외아들을 데리고 시골로 떠나자 혼자 프랑스로 여름휴가를 떠난다. 그녀는 인생을 실험할 준비를, 성적모험을 비롯한 온갖 기회를 ‘벼르고’ 있다. 도취적인 분위기는 중반 이후까지 내내 이어지는데, 엘린이 기대와 예감을 품고 주의 깊게 바라보는 여름 풍경이 더할 수 없이 감각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태양, 밤과 꿈의 맞수가 너무 강력했기에 암시, 기만, 스치는 매혹을 내비치는 수많은 미묘한 표정이 밀려나 있었다.’ ‘엘린은 더 많은 것들을 갈망했다. 사랑을, 안정감을, 마치 정신적 당뇨병과 같은 것에 걸려서 지금껏 받아온 것들을 온데간데없이 잃어버린 것처럼.’

이처럼 달콤하면서도 정확한 문장들이 남프랑스 해변보다 뜨겁게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소설이 표방하는 것은 낭만이 아닌 극도의 사실주의다. 욕망 속에 죽음이 드리워지고 희망은 변경 불가능한 통보들, 돈과 질병 같은 것들에 압살된다. 활짝 핀 꽃송이가 순식간에 색과 물기를 뺏기고 드라이플라워가 되는 것처럼 주인공을 둘러싼 극단적인 변화는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진실이란 결국 감정적 진실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은 ‘그 일을 겪은 사람이 마음은 어떠한가?’라고 재차 물어야 한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엘린이 갈망 대신 공허함을 얻은 것은 상실인가, 성장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차가운 겨울 풍경이 액자처럼 걸린 창문을 바라보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져본다.

김성중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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