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셉션이 좋아서 공이 빠르게 들어온다. 구창모와 비슷한 느낌이다.”
국내 최고 포수 양의지가 새 외국인 투수 콜 어빈과 첫 대면 하고 받은 인상이다. 호주 시드니 스프링캠프에서 어빈의 공을 받아본 양의지는 새 외국인 투수를 칭찬하며 과거 NC에서 함께 뛰었던 구창모를 언급했다.
구창모의 디셉션(숨김 동작)은 국내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팔 스윙이 워낙 짧고 빨라 타자가 타이밍을 맞히기가 어렵다. 그 디셉션의 위력을 가장 잘 아는 선수 중 하나가 양의지다. 양의지는 어빈에 대해 “제구도 좋은데 디셉션이 특히 좋더라. (구)창모처럼 스윙이 짧아서 공이 금방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어빈은 메이저리그(MLB) 6시즌 동안 28승을 올린 투수다. 당장 지난 시즌에도 MLB 현역 선발로 뛰었다. 좌완이 150㎞를 웃도는 직구를 던지고 커브, 커터,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도 갖췄다. 여기에 구창모급 디셉션이라는 양의지의 평가까지 더해졌다.
어빈의 뒤를 받칠 잭 로그 역시 외부 기대치가 높다. 어빈과 같은 좌완으로 제구가 좋고 다양한 구종을 구사한다. 좌타자 상대 특히 무서운 투수라는 평가다. 양의지는 “왼손 타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타석에서 되게 무섭게 공이 들어온다더라”고 전했다.
다만 두산은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이승엽 감독부터 말을 아꼈고, 지난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외국인 투수들의 공을 받아본 양의지 역시 비슷한 태도다. 양의지는 “KBO리그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면서도 “캠프 와서 처음 보고 선수가 어떻다고 말하는 건 좀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10승 정도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15승 이상을 기대하니까 그만큼 더 조심스럽게 얘기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줄 이은 부상으로 외국인 투수들의 공백이 워낙 컸던 만큼 새 투수들에 대한 기대치는 당연히 높지만, 그래서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올 시즌 양의지는 주장 완장을 달았다. 두산에서 주장은 처음이다. 새 외국인 투수들을 챙겨야 하고, 주장으로 어린 후배들도 신경 써야 한다. 거기에 개인 성적 또한 놓칠 수 없다. 이래저래 많이 바쁠 수밖에 없는 올 시즌이다. 지금도 시드니 훈련장에서 어린 포수 후배들과 함께 훈련하며 다년간 쌓은 노하우를 전수하는 중이다.
양의지는 지난해 잔 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쇄골 통증으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한 건 특히 아쉬웠다. 정규시즌 포수 수비 이닝(720이닝) 기준을 채우지 못해 골든글러브 후보에도 들지 못했다. 양의지는 “좀 어색했다. 그동안 (골든글러브는) 당연히 받는 거라는 착각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말년에 좀 더 웃으면서 야구 그만두려면 더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양의지가 후보에 들지 못했던 포수 골드글러브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리그 포수 최고참 강민호라는 점에서 특히 자극이 됐다. 양의지는 “민호 형이 저보다 2살 위인데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후배들한테 좋은 모습 보여주는데, 나도 더 책임감 느끼고 마음가짐도 강하게 먹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 잔 부상 속에서도 양의지는 타율 0.314에 17홈런을 클래스를 증명했다. 이날 시드니 첫 라이브 배팅에서도 반대 방향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여러 개 만들었다.
양의지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올 시즌도 관건은 부상 없이 얼마나 건강하게 경기에 나서느냐는 것이다. 양의지는 “조인성 (배터리) 코치님이 우선 마음가짐은 전 경기 다 나간다고 생각하자고 하시더라. ‘체력 떨어지는 게 보이면 언제든 바꿔줄 테니 일단 너는 전 경기 나갈 생각으로 준비를 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지난 시즌 막판 쇄골 부상은 거의 다 털어냈다. 양의지는 “시즌 끝나고 치료받으면서 마사지나 보강 운동도 많이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다 회복을 했다. 또 아파 버리면 더 늦어지니까 더 조심하고 집중해서 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산의 올 시즌 목표는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새 주장 역시 생각이 다르지 않다. 양의지는 “우승이라는 게 쉽지 않지만, 우리가 준비한 걸 초반에 잘 보여준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선발이 흔들린 대신 좋은 불펜을 얻었다. 선발만 좀 더 안정되면 좋은 순위가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가을 야구가 목표가 아니라 가을에 더 오래 경기하고, 더 웃을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