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우주의 절반은 솔로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짝이 있다. 곁에 짝을 두고 있는 별을 쌍성이라고 한다. 별 두 개가 커플을 이룬 쌍성은 우주에서 아주 보기 쉽다. 그런데 이 흔한 쌍성을 보기 어려운 현장이 있다. 바로 은하 중심 초거대 블랙홀 주변이다.
오랫동안 천문학자들은 블랙홀의 압도적인 중력이 그 주변에 새로운 별이 만들어지는 것을 방해할 거라 생각했다. 이미 블랙홀의 먹잇감이 되어서 잡아먹혔을 수도 있고, 애초에 블랙홀 주변에서는 가스 구름이 안정적으로 반죽되지 않아 새로운 별이 만들어질 수 없는 극단적인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 천문학자들은 끈질긴 관측 끝에 역사상 처음,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A* 블랙홀 주변을 맴도는 쌍성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건 은하 중심 블랙홀이라는 혹독한 환경조차 별 커플의 사랑이 극복해낼 수 있다는 로맨틱한 감동을 넘어 더 놀라운 가능성을 담고 있다.
우선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A* 주변의 환경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이해하려면 잠시 그 주변에서 발견된 세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은하 중심에는 태양에 비해 질량이 400만 배 더 무거운 육중한 블랙홀이 살고 있다. 일찍이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중심에서 수 광년 정도밖에 안 되는 비좁은 공간 안에서 별들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맴돌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별들이 무언가 아주 무거운 천체에 붙잡힌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별들의 궤도 중심에는 딱히 밝게 빛나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별들이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검은 허공에 붙잡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로 비좁은 공간 안에, 이 정도로 무거운 질량이 한데 모여 있으려면 가능성은 하나뿐.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다. 이를 통해 천문학자 안드레아 게즈와 라인하르트 겐첼은, 수학적으로 블랙홀의 특이점을 규명한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궁수자리 A*는 천문학자들에게 인기 많은 목표가 되었다. 관측도 많이 했다. 이를 통해 꽤 많은 수의 별들이 성단처럼 블랙홀 주변을 빠르게 맴도는, 초고속 성단이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이것을 S 성단이라고 부른다. 또 그 중에는 아주 독특한 천체들이 있는데 일명 G 천체라고 불리는 녀석들이다. 최초의 G 천체는 2005년 발견되었다. 이들은 성단도 아니고 하나의 무거운 거대한 단일 별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단순한 별이라기에는 크기가 너무 크다. 게다가 궁수자리 A* 블랙홀 주변에서 타원 궤도를 그리는 동안 크기도 크게 들쭉날쭉한다. 블랙홀에서 멀어지면 사이즈가 작아지고 훨씬 밀도가 높아진다. 반면 블랙홀에 가까이 다가가면 사이즈가 훨씬 크게 부풀어오르고, 밀도는 확연하게 감소한다. 그래서 일부 천문학자들은 이것이 단순히 거대한 하나의 단일성이 아니라 좀 더 펑퍼짐하게 부푼 가스 구름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블랙홀에 접근하면서 중력, 조석력이 증가하기 때문에 가스 구름이 더 넓게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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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보이는 동시에 펑퍼짐하게 퍼진 가스 구름으로 에워싸였다는 독특한 특징은 이들의 기원을 더 극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원래 G 천체는 별 두 개가 커플을 이룬 쌍성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압도적인 중력을 행사하는 은하 중심 블랙홀에 의한 섭동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결국 쌍성의 궤도가 흐트러지고 두 별은 진한 충돌을 해버렸을 수 있다. 두 별이 충돌하면서 주변에 거대한 가스 구름이 퍼지게 되었고, 그 모습이 지금의 G 천체로 관측되는 것일 수 있다.
지금까지 G 천체는 총 여섯 개가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가설이지만, 적지 않은 천문학자들이 이 가설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애초에 블랙홀이라는 압도적인 중력 깡패가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으로 서로의 곁을 맴도는 쌍성이 만들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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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드디어 그 쌍성의 존재가 처음 확인되었다. 이번 발견은 사실 굉장히 운이 좋았다. 일단 우리 은하 중심, 궁수자리 A* 블랙홀 주변을 떠도는 별을 세밀하게 관측하는 건 꽤 까다로운 도전이다. 별과 먼지 구름이 아주 높은 밀도로 가득 차 시야를 가리기 때문에 단순히 가시광 관측으로는 보기 어렵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먼지 구름을 꿰뚫어볼 수 있는 적외선 파장으로 관측했다.
이번 분석에는 칠레 VLT로 2005년에서 2019년 사이에 관측한 아카이브 데이터를 활용했다. 15년은 연구에 아주 충분한 시간이다. 블랙홀 곁을 맴도는 별들의 궤도는 아주 작고 빨라서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주기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추가로 더 세밀한 분석에는 2019년 이후 하와이 켁 망원경의 데이터를 활용했다. 특히 오랫동안 쌓여있던 아카이브 데이터를 샅샅이 뒤졌다.
천문학자들은 마냥 펑퍼짐한 가스 구름이라고만 생각했던 작은 얼룩 D9에서 선명한 도플러 효과의 징후를 확인했다. 번갈아가면서 파장이 더 짧아지는 청색편이, 그리고 파장이 더 길어지는 적색편이를 반복한다. 이것은 두 별이 서로 번갈아가면서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멀어지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뜻이다. 이곳은 별이 하나가 아니다. 둘이 있다. 그리고 그 두 별이 서로의 중력에 붙잡힌 채, 블랙홀 곁에서 아슬아슬한 왈츠를 추고 있다.
궤도를 통해 두 별의 질량을 파악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둘 중 무거운 별은 태양의 2.8배 질량을, 가벼운 별은 태양 질량의 73% 정도 질량을 갖는다고 추정한다. 두 별은 약 372일, 지구 시간으로 1년 살짝 넘는 주기로 함께 맴돌며 블랙홀 곁을 떠돈다.
현재 이 쌍성은 극단적인 버전의 삼체 문제가 벌어지는 현장이라고 볼 수 있다. 태양 질량의 2.8배, 그리고 75% 질량을 가진 두 별, 그 옆에 태양 질량의 400만 배나 되는 압도적인 질량을 가진 초거대 질량 블랙홀. 이 세 천체가 서로 중력을 주고받으면서 궤도의 변화를 복잡하게 만든다. 특히 삼체 문제가 벌어지면서 그 중에서 함께 짝을 이룬 쌍성의 궤도가 흐트러지는 메커니즘을 코자이 메커니즘, 또는 폰 세이펠-리도프-코자이 메커니즘이라고 부른다. 결국 블랙홀의 괴롭힘을 버티지 못하고 두 별이 언제 충돌할지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앞으로 100만 년 뒤에 벌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더 흥미로운 건, 이 쌍성의 나이가 겨우 270만 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다. 즉 이 쌍성은 처음 만들어지고, 두 별이 서로 충돌하기까지 370만 년밖에 안 되는 시간이 주어진 현장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 이미 4분의 3에 해당하는 270만 년 정도가 흘렀다. 이제 겨우 100만 년의 시간을 남겨둔 상황에서 운 좋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천문학적으로 보면 이건 정말 찰나의 포착이라고 볼 수 있다. 정말 극적인 행운이다. 만약 인류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나서 우주를 관측했거나, 조금만 더 게으르게 망원경을 세웠다면 이 현장을 놓쳤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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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견은 은하 중심 블랙홀 주변에서도 별의 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지어 안정적인 궤도를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쌍성까지 존재한다. 물론 다른 평범한 현장에 비해서는 훨씬 짧은 시간 안에 궤도가 흐트러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쌍성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최근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궁수자리 A* 블랙홀 주변 G 천체들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꽤 많은 천문학자들이 선뜻 믿지 못한 가설, 바로 쌍성을 이루던 별이 충돌하면서 가스 구름만 퍼지고 남은 덩어리라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은하 중심 블랙홀은 한꺼번에 아주 많은 삼체, N체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머리 아픈 현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현장에서 벌어지는 코자이 메커니즘은 은하 중심에 어떻게 태양 질량의 수백만 배에 달하는 무거운 블랙홀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은하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도 비교적 가벼웠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블랙홀 주변에서도 별이 꽤 만들어진다면, 그 별들도 언젠가 최후를 맞이하면서 작은 블랙홀을 남기게 된다. 이렇게 남게 된 작은 블랙홀 중 일부는 코자이 메커니즘과 같은 복잡한 역학적 과정을 통해 은하 중심 블랙홀의 새로운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은하 중심의 블랙홀은 야금야금 덩치를 불려나가며 지금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은하 중심에 쌍성이 존재하고, 그 현장에서 복잡한 삼체 메커니즘이 한창 벌어진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은하 중심 블랙홀이 어떻게 먹잇감을 사냥하는지에 대한 그림도 더 선명하게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한편 블랙홀 곁에서 아슬아슬한 왈츠를 추는 별들은 우리 은하 공간을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싸돌아다니는 폭주족 별들, 일명 초고속 별(hypervelocity star, HVS)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도 제공한다. 만약 쌍성이 서로 충돌하는 게 아니라, 둘 중 하나만 블랙홀에게 잡아먹히고 나머지 하나가 살아남는 방식으로 운명이 결정된다면, 갑작스럽게 짝을 잃은 나머지 별은 아주 빠른 속도로 튕겨 날아가게 된다. 끈에 묶은 돌멩이를 손으로 잡고 돌리다가 손에서 놓았을 때와 비슷하다. 심지어 그 중에는 시속 600만 km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별들도 있다.
블랙홀, 특히 은하 중심에 살고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은 아주 흥미로운 실험 무대다. 가장 극단적인 중력을 행사하고 있는 덕분에 극적인 궤도 변화를 보이는 역학적 진화 과정을 비교적 빠른 시일 안에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된다. 또 가장 극단적으로 시공간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검증하기에도 좋다. 다른 평화로운 우주에서는 그 정도가 너무 미미해서 알아채기 어렵지만, 블랙홀 주변은 상대성 이론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블랙홀은 아주 좁은 영역에 모든 질량이 모여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스티븐 호킹이 고민했듯이, 블랙홀은 거시적일 뿐 아니라 미시적이다. 블랙홀은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거시 물리학, 그리고 미시 세계의 양자역학이 화해를 이루는 무대다.
이번에도 블랙홀은 물리학의 최후의 보루이자 최전선으로서 자신의 훌륭한 가치를 다시 입증했다.
참고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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