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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회민주주의 정권의 경제 전략의 핵심은 ‘사회적 투자를 통한 참여의 확대’다
이것이 21세기 사회민주주의 경제학의 대답이 되고 우리로서도 지켜보고 참조해야 할 예가 될 것이다
조만간 들어서게 될 새로운 정부는 어떤 경제 정책을 펼쳐야 할까. 우리 경제가 당면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수출과 내수 모두에서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침체를 극복하고 경제의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둘째, 지금까지 누적되어 온 불평등의 문제를 완화해야 한다. 셋째, 윤석열 정부를 거치면서 엄청난 구멍을 안게 된 나라 살림의 적자를 해결해야 한다. 이 중 하나도 풀기가 어려운 문제이지만, 더욱더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문제가 그중 하나를 풀고자 하면 다른 두 가지 문제와 충돌하기에 십상인 ‘복합 위기’의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 있다. 게다가 계엄령이라는 어이없는 폭주로 인해 야기된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분열과 민주주의의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더욱 복잡한 과제까지 주어져 있는 상태이다. 이 어려운 길목에 서게 된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모범적인 사례가 없을까?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이끌고 있는 스페인의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그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정부가 들어서게 된 시작부터 2025년의 대한민국 상황과 닮아 있다. 그 이전에 집권하고 있었던 보수당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 내각은 여러 부패 스캔들은 물론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 논쟁 등으로 인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었고, 이는 단순한 정권의 위기가 아니라 스페인 민주주의 제도 자체까지 흔들어 놓고 있었다. 게다가 계층 간 불평등의 문제가 우파 정권의 통치와 긴축 재정과 맞물려 심화하여 유럽연합 내에서 최악의 상태로 떨어져 있었다. 산체스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스페인 사회주의노동자당’)은 그 자체로 큰 인기가 있어서 다수당이 되었다기보다는, 이렇게 나라 전체가 뿌리까지 흔들리는 위기 상태에서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유일의 선택으로 여겨졌던 것이 집권의 중요한 계기였다. 산체스 또한 이러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여러 지역 정당들과 함께 성공적인 전국적 연합을 이루어 안정적인 다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18년 6월2일에 들어선 산체스 내각은 엉망이 된 국가 재정을 바로잡으면서도 불평등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위기에 처한 스페인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몹시 어려운 과제에 처하게 되었다. 먼저 산체스 총리가 확고하게 했던 원칙은 재정의 건전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점이었으니, 이는 전통적인 좌파 정당의 노선과 분명히 결을 달리하는 것이라 당 안팎으로 여러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재무장관에 좌파라기보다는 중도 우파에 가까운 인사를 등용하여 재정 지출이 방만하게 팽창하는 것에 쐐기를 박았다.
‘라이더 법’으로 불평등 해소
대신 스페인 정부는 재정의 ‘내용적 합리성’에 초점을 두었다. 불요불급한 부문에서 과감하게 예산을 삭감하면서 동시에 경제의 활성화와 불평등의 해소라는 목표에 비추어 우선적으로 중요한 부문에는 오히려 정부 지출을 대폭 늘리는 행보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의료 보험, 교육, 임금 불평등 해소 등 ‘사회적 투자’라고 할 수 있는 부문들에 정부 지출의 우선성이 주어졌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를 맞으며 스페인 경제의 성장률 또한 위기를 맞게 되지만, 산체스 내각은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정부 지출을 앞에서 말한 바의 ‘사회적 투자’와 더욱 긴밀하게 결합시켰던 덕으로 스페인 경제는 유럽연합 국가들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를 회복하여 2022년 1분기에는 코로나19 위기 이전의 성장률을 넘어서는 성적을 보여줄 수 있었다.
또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법적 조치로 괄목할 만한 것으로서 정권 출범 당시인 2018년에 통과된 ‘라이더 법’을 들 수 있다. 이른바 ‘긱 이코노미’를 떠받치는 중요한 요소인 택배 노동자 등 불안정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분명하게 인정하고 다른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권리를 완전히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작업 할당과 임금을 통제하는 플랫폼들의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접근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로 큰 문제였던 임금 불평등 또한 많은 개선을 볼 수 있었다.
재정 건전성의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사회적 투자’의 확대를 통해 경제 활성화와 불평등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경제 운영의 노선은 특히 중소기업 육성 정책에서도 두드러졌다. 스페인에서도 중소기업은 전체 고용의 70%를 차지하는 압도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하지만 이 중소기업들은 또한 부족한 자본으로 인해 기술 도입이 원활치 않고 낮은 생산성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스페인 정부는 중소기업들의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지원하기 위해 45억유로의 자금을 따로 지정해 두었고 이를 통해 150만개의 중소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동시에 생산성이 떨어지는 기업들의 파산을 용이하게 하는 각종 조치들을 도입하여 보다 과감한 창업이 더욱 활발하게 벌어지도록 장려하기도 하였다. 기업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장기적인 전략적 기술적 투자를 국가가 떠안으면서 기업가 정신을 활성화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스페인 참고 삼아 미래 준비할 때
또한 이러한 정책은 집권 사회민주당의 지지층을 단단히 하면서 또한 스페인 민주주의 체제 전체를 튼튼하게 하는 정치적 효과도 가져올 수 있었다. 토마 피케티 등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2000년대를 전후로 미국과 유럽의 진보정당들은 전통적인 지지층이었던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노동계층과 유리되어 높은 교육을 받은 전문직 종사자 등의 중상류층의 정당으로 서서히 변질되어 가는 행태를 보여 온 바 있었고, 이것이 좁게는 진보 정치 보다 넓게는 민주주의 체제의 위기를 가져왔으며, 또한 우익 포퓰리즘이 특히 하층계급에서 발호하게 되는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바 있었다. 하지만 2018년 이후의 스페인 사회민주주의 정권이 보여준 행보는 분명히 이와 다르다. ‘사회적 투자’를 통해서 불평등을 해소하고 노동 계층에 더 많은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정책 덕분에 스페인 사회민주주의는 주요 대도시 중심부를 넘어서 후진 지역과 농촌에 걸쳐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세 번째 임기로 들어선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경제 정책은 성장률이라는 점에서도 큰 성과를 보여왔다. 2018년 이전 유럽연합의 성장률과 대략 비슷한 수치를 보였던 스페인의 경제성장률은 2021년 이후 지금까지 유럽연합의 성장률을 크게 앞서 왔다. 특히 2023년에는 프랑스·이탈리아·독일 등을 모두 능가하는 성과를 냈으며, 2024년에도 3.2%라는 성적을 보여주었다. 재정 건전성의 노력 덕분에 코로나19 위기로 120%까지 올라갔던 정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 또한 계속 줄어 2024년 말 시점에서는 102%까지 내려앉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스페인 사회민주주의 정권의 경제 전략의 핵심은 재정 건전성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원칙 위에서 ‘사회적 투자’의 확장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을 시장 경제에 참여하도록 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사회적 투자를 통한 참여의 확대’인 것이다. 시장 경제는 끊임없이 배제와 차별을 낳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이 장기적으로 누적되면서 시장 경제 자체의 활력을 잠식한다는 것이 197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20세기 중반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경제 정책을 이끌었던 군나르 뮈르달의 가르침이었다. 과감한 사회적 투자를 통해 소외 계층과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시장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이러한 시장 경제의 경향을 역전시키고 다시 경제의 활력을 회복한다는 것. 이것이 21세기 사회민주주의 경제학의 대답이 되는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일일 것이다.
대한민국에 사회민주당은 없지만, 이러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는 스페인은 우리로서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참조해야 할 한 예가 될 것이다. 이제 빠른 속도로 닥쳐오고 있는 미래를 준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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