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시대적 과제
3회 - ‘인구 절벽’을 넘어
“미래 불안” 젊은층 중심 출산 소극적
출산율 0.72명… 전세계서 가장 급락
2025년 초등학교 184곳은 입학생 없어
‘외국 인력 유치’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
2024년 체류 외국인 265만명… 인구 5%
“한국, 이미 다문화사회로 가고 있는 셈”
“인구 문제·이민정책 컨트롤타워 구축
단일민족이란 배타적 테두리 걷어내고
외국인 차별받지 않는 구조 만들어야”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대응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건 2006년 노무현정부에서다. 기획예산처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비롯한 국책연구기관 주도로 수십 차례 토론회를 거쳐 ‘비전2030’이라는 중장기 대책을 내놓았다. 정권마다 논의 기구 이름은 달라졌지만 저출생 문제는 국가적 과제로 꾸준히 다뤄졌다. 저출생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그동안 투입된 예산이 2023년 기준 380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결과는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급격한 하락세를 기록했다. 조앤 윌리엄스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가 한국 저출생 실태를 듣고 머리를 부여잡은 채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니어재단(이사장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기획·편저한 ‘한국의 새 길을 찾다’ 토론회에 참여한 원로·학자들도 인구 문제를 대한민국이 풀어야 할 핵심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김종인 전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미래에 가장 중요한 사회 지표가 출산율인데 지금과 같은 0.7대로 가면 우리나라 역동성은 사라진다”면서 “지금 국가 지도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출산율을 높이고 이민정책을 펴서 인구 구조를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구 전문가들의 제언도 다르지 않다. 저출생 기조를 단기간에 반전시키기 어려운 만큼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문화, 다른 민족·문화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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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안 낳는 사회
19일 통계청에 따르면 연간 출생아는 2015년 43만8000명에서 2023년 23만명으로 떨어졌다. 8년 만에 출생아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국내 출생아는 2012년 48만4600명에서 2014년 43만5400명까지 떨어졌다가 2015년 43만8000명으로 소폭 올랐지만, 이후 계속 내림세다. 지난해의 경우 2023년보다 증가한 24만2000명으로 잠정집계(행정안전부)됐지만, 2010년대와 비교하면 여전히 적은 규모다.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어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 이후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저출생의 그늘이 가장 먼저 덮친 곳은 어린이집·유치원과 학교다. 정부의 교육·보육 통계를 종합하면 2023년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3만7395곳으로 2013년(5만2448곳)보다 28.7%(1만5053곳) 줄었다. 10년 만에 어린이집·유치원 4곳 중 1곳이 사라진 셈이다. 초등학교도 입학생이 줄어 올해 전국에서 184개교가 입학생이 없어 입학식을 치르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세종의 한 초등학생 학부모 A씨는 “첫째가 다니던 기관이 한국 나이 5∼7세 300명이 다니는 곳이었는데 아이가 다닐 때만 해도 대기자가 있었지만 매년 입소생이 줄어 이제 4세반도 생겼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늘 8∼9개 반이었지만 올해 신입생은 6개 반으로 줄었다”며 “저출생이 심각하다는 게 체감된다”고 말했다.
저출생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최항섭 국민대 교수(사회학)는 저출생·고령화가 초래한 가장 큰 위기로 ‘경기침체’를 꼽았다. 최 교수는 “노동인구의 역동성이 줄어들고, 그 과정에서 경제의 창의성이 옅어지면서 다시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며 “경기침체가 오면서 저출생도 심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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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대한 불안’ 없애야
결혼, 자녀 유무를 선택하는 데 가장 큰 기준은 나의 삶 또는 부부의 삶의 질(質)이다. 결과적으로 결혼과 출산, 양육에 과다한 비용이 들어가거나 에너지가 소비되는 풍토가 지금의 저출생 흐름을 낳은 셈이다. 김성희 L-ESG평가연구원 원장(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은 “저출생은 ‘애 낳아서 키우기 힘든’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한 명을 낳든가, 아예 안 낳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겨지는 것”이라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생존하기 쉽지 않고, 자기 삶의 안정성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있다”고 진단했다.
아이를 한 명 낳은 집이 ‘추가 출산’을 망설이는 데도 이런 인식이 한몫한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B씨는 “아이를 둘 정도는 낳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낳아 키우다 보니 일하면서 돌봄 문제를 해결하기 너무 어려웠다. ‘한 명 더 낳았다가는 가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자녀 한 명이 있는 또 다른 ‘워킹맘’ C씨는 “요즘 육아 필수품은 ‘조부모’란 말도 있다. 다른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맞벌이 부부가 오롯이 자녀를 키우기 힘든 시대”라며 “아이를 더 낳아도 국가 도움을 받아서 충분히 키울 수 있다는 인식을 줘야 다자녀 가정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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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가치’ ‘다문화 관용성’ 키워야
보육의 어려움을 덜기 위한 휴직·지원 제도 등과 더불어 가족의 가치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재임 시절 ‘가족의 가치’를 자주 강조했다. 김 전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의 중요성, 가정의 가치는 국가 핵심 가치가 돼야 한다”면서 국가와 민간단체가 건강한 가족 문화 확산에 나서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인식에는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가족의 해체, ‘나만 잘살면 된다’는 개인주의가 두드러진 사회 현상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
점차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바뀌는 현실에 발맞춰 여전히 이방인에 폐쇄적인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지난해 기준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265만명으로 인구의 5% 수준이다. 학교도 변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전체 학생이 줄어드는 가운데 부모 중 한 명의 국적이 외국인이었거나 해외에서 중도입국한 이주배경학생은 2014년 6만7806명에서 지난해 19만3814명으로 약 3배 수준이 됐다. 전체 학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 기간 1.07%에서 3.72%로 늘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재학생이 100명 이상인 학교 중 이주배경학생 비율이 30%인 학교는 지난해 기준 100개교에 달한다. 특히 경기 안산·시흥, 서울 구로·영등포 등 외국인 밀집 지역에선 이주배경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학교도 많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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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이민 문턱을 낮추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최 교수는 “저출생이란 흐름은 10~20년 안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미국처럼 이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타 국가 사람들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차별받지 않고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것이 현재로선 저출생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도 이민청 설립 등 이민정책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외국 인력 활용뿐 아니라 사회 통합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주형환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전날 제7차 인구전략 공동포럼에서 “우리나라의 이민 증가율은 50.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지만 한국은 아직 외국인 우수 인력이 정착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며 “우수인재·고숙련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영주권에서 국적까지 빠르게 취득할 수 있는 ‘패스트 패스’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주배경주민, 외국인들을 관용·배려하는 문화 정착은 갈 길이 멀다. 안대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은 “한국은 배타성 때문에 생기는 사회적 갈등이 많다. 혈통적·유전적 단일민족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단일민족이 돼야 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다문화에 대한 수용성과 인식 개선 사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이사장은 “현재 이주배경학생 중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들이 열등감이나 상처를 안고 성장하면 유럽처럼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주배경학생에 대해 국가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화연 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어린 시절부터 다른 인종에 대해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학습할 수 있도록 정규교육과정에 다양성 교육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변세현·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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