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연합(EU)이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를 90일간 보류했다. 미국이 EU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고, EU와 관세 협상에 들어가면서다.
14일(현지시간) EU 집행위원회는 대미 보복 조치 시행 연기를 위한 이행법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원래 EU는 미국의 철강·알루미늄 관세에 대한 대응을 위해 이달 15일, 다음달 16일, 12월 1일 등 세 차례에 걸쳐 210억 유로(약 33조8980억원) 상당의 미국산 상품에 10~25% 추가 관세를 물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하자, EU 역시 한 발 물러섰다. EU는 이번 보류 조치를 오는 7월 14일까지 90일간 적용한다. 미국의 조치에 비례해 유예 기간을 둔 셈이다.
EU와 미국은 14일부터 관세 협상에 들어갔다. 다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협상이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에는 (보류된) EU 대응 조치가 발동될 것”이라고 했다. 집행위도 “추가적인 대응 조치를 위한 준비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관세 협상과 별개로 양측 간 분위기는 갈수록 나빠지는 모습이다. EU의 대미 경계심은 이미 중국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집행위는 미국을 찾는 EU 당국자들이 선불 휴대전화를 쓰게 하는 등 미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이는 EU 당국자들의 중국 출장 때와 유사한 수준의 보안 조치다.
미국으로 가는 당국자는 정보 탈취 등을 우려해 매뉴얼상 국경에서 휴대전화를 끄고, 특수 케이스에 넣어야 한다. 미국 국경 검문소 직원은 외국인 방문객의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압수해 내용을 확인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EU의 한 당국자는 FT에 “집행위는 미국이 집행위의 시스템에 접근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행위는 "안보 권고 사항이 최근 개정됐다"면서도 상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있다.
FT는 “미국을 잠재적인 안보 위험 요인으로 취급하는 이번 일은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이후 대서양간 관계가 얼마나 악화했는지 보여준다”고 전했다.
뤼크 판미델라르 브뤼셀 지정학연구소장은 “미국이 중국이나 러시아는 아니지만, 자국 이익과 힘을 위해 법을 넘어선 방법을 쓰곤 하는 적수”라며 “2013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의 전화를 도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