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이 사진 한 장을 만들어내는 것만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영상’의 시대가 완전히 열렸습니다. 사람이 직접 촬영하지 않아도 AI가 텍스트 한 줄만으로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장면 전환이 있는 영상을 만들어냅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구글과 오픈AI가 있습니다. 최근 두 기업은 각각 Veo 3와 Sora 2라는 최신 버전을 내놓으며 영상 생성 AI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습니다. 두 AI 모델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우리가 영상을 상상하고 제작하고 소비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거인의 진화: Veo 3와 Sora 2, 무엇이 다른가
구글의 Veo 3는 텍스트를 입력하면 1080p HD 고화질 영상을 만들어내는 모델입니다. 사진을 업로드하면 이를 영상으로 변환할 수도 있습니다. 이전 버전과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대화, 발자국 소리, 바람 소리 등 현실적인 오디오를 영상과 동기화해 생성할 수 있습니다.
Veo 3는 구글의 AI 생태계인 제미나이(Gemini)와 연동되어 있습니다. 사용자가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바로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대규모 제작에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죠. 이러한 통합 전략 덕분에 Veo 3는 단순한 영상 생성 도구를 넘어 구글의 플랫폼 안에서 작동하는 하나의 영상 운영 체제(OS)처럼 진화하고 있습니다.
반면 오픈AI의 Sora 2 역시 1080p 해상도 영상을 생성할 수 있으며 와이드스크린, 세로, 정사각형 등 다양한 화면 비를 제공합니다. 장면 간 전환과 인물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한 소녀가 도시를 달려가며 해가 지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영상’과 같이 서사 구조가 있는 콘텐츠를 처리하는 데 유리합니다.
두 모델의 차이는 방향성에서 드러납니다. Veo 3가 시각과 음향의 통합, 즉 ‘현실감’을 추구한다면, Sora 2는 서사와 흐름의 자연스러움, 그리고 창작적 통제력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또 다른 모델은 일론 머스크의 그록(Grok)입니다. 그록은 본래 xAI가 만든 AI 챗봇 모델이지만, 머스크 측은 이를 종합 AI 플랫폼으로 확장하려는 비전을 공개했습니다. 그록 이매진(Grok Imagine)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영상을 합성하지만, 리얼리즘이나 모션 정확성 면에서는 아직 도전이 남아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록에서 생성된 영상은 소셜 네트워크인 X(구 트위터)와 연계하는 전략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록 이매진의 등장은 Veo 3와 Sora 2 사이의 경쟁 구도에 또 하나의 축을 추가하며, AI 영상 시장의 다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AI 영상의 진보는 ‘정교함’의 정도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이미지가 흔들리고 인물의 손가락이 왜곡되는 등 오류가 많았습니다. 특히 카메라 앵글이 바뀌면 물체가 사라지거나 변형되는 현상은 AI 영상의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최신 버전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대폭 개선되었죠. 프레임 간 연속성이 높아지고 조명과 그림자, 카메라 이동까지 제어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제 영상 속 인물의 표정 변화나 움직임의 속도, 카메라 시점까지 AI가 학습한 ‘현실의 문법’을 따릅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시선을 닮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군중 장면이나 세밀한 손동작, 얼굴의 미묘한 표정 등에서는 여전히 왜곡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이미 일반 시청자가 단번에 AI가 만든 영상이라고 알아채기 어려운 수준까지 발전했습니다.
이런 기술적 정교함이 실제 현실에 얼마나 근접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어 교육 플랫폼 야나두는 ‘할머니와 외국인 강사’가 등장하는 AI 숏폼 콘텐츠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영상은 할머니가 “이건 서비스예요”와 같은 콩글리시 표현을 쓰면, 외국인 강사가 자연스러운 영어 표현으로 교정해 주는 형식을 담고 있습니다. 짧은 영상이지만 익살스러운 장면 전환과 인물 표정이 매우 자연스러워 많은 이들이 “이게 AI로 만든 거였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공개된 지 보름도 채 되지 않아 조회수가 백만 단위를 넘기며 입소문을 탔고, AI 영상 기반 콘텐츠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대표 사례가 되었습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실사 영화 촬영 현장으로 보이는 숏 영상도 최근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 영상은 실제 촬영 현장처럼 보였지만, AI로 생성된 가상 장면이었습니다. 35초 분량의 영상임에도 배우 분장, 장비 배치, 카메라 워크가 매우 자연스럽게 구성되어 많은 이들이 실제 촬영 현장으로 착각했습니다.
이 영상은 하루 만에 수십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무섭다, 진짜 같다”는 반응이 다수였습니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슬램덩크’나 ‘진격의 거인’ 같은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유사한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AI 영상이 ‘가짜와 실제’의 경계를 흐릴 수 있다는 경고이자, 동시에 기술 정교도 측면에서의 진보를 증명하는 사례입니다.

이처럼 AI 영상 기술의 발전은 단순한 기술 향상을 넘어 다양한 산업 구조의 재편으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먼저, 콘텐츠 제작의 민주화입니다. 과거에는 영상 한 편을 만드는 데 수백만 원의 예산과 전문 인력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짧은 문장 하나로 광고, 교육, 홍보 영상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마케터는 몇 초 만에 광고를 제작하고, 예술가는 상상을 즉시 현실로 구현합니다. 특히 스타트업과 1인 크리에이터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다음은 플랫폼 권력의 이동입니다. 기존에는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콘텐츠를 유통했다면, 이제는 AI 모델을 보유한 기업이 콘텐츠 생산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제미나이 안에 Veo 3를 통합하고, 오픈AI가 AI 기반 영상 SNS를 출시하고 실험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마지막으로 규제와 윤리의 과제입니다. 누구나 영화 같은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린 만큼 가짜 뉴스나 딥페이크, 저작권 침해 문제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우려도 함께 커집니다. 미국의 한 매체는 Veo 3로 생성된 인종차별적, 반유대주의적 영상이 틱톡에 업로드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훈련 데이터 출처에 대한 논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상의 사실성이 높아질수록 가짜 뉴스, 딥페이크, 저작권 침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기술 개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와 법적 장치가 함께 논의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I 영상 생성은 이제 상상력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창작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구글과 오픈AI의 AI 모델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공통된 목표는 같습니다. ‘사람이 상상한 것을 즉시 시각화 한다’는 것, 그리고 ‘창작의 문턱을 없앤다’는 것입니다.
Veo 3와 Sora 2의 대결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닙니다. 이는 창작의 미래, 진실의 본질, 그리고 우리가 영상이라는 매체를 어떻게 소비하고 신뢰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앞으로 영상은 ‘찍는 것’에서 ‘입력하는 것’으로, 감독은 ‘촬영하는 사람’에서 ‘프롬프트를 설계하는 사람’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8초짜리 영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는 그 변화를 어떻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AI가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인간의 창의력은 여전히 중심에 남을 수 있을까요? Veo 3와 Sora 2의 경쟁은 그 질문에 대한 첫 번째 실험입니다.
윤준탁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