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8개 대학 총학생회연합 주최 토론회 참석
가장 먼저 계엄사태에 사과..."여당 대표로서 죄송"
"이번 계엄 자유민주주의 파괴...그렇기에 잘못 돼"
"탄핵 입장 번복?...갈등 최소화 위해 노력한 것"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정치를 해서 얻을 수 있는 복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께 질문을 받으면서 제가 더 많이 배웠습니다. 역시 보여지는 게 중요한 데 갈 길이 멀다 싶었습니다."
최근 책 출간을 계기로 정계에 복귀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6일 신촌 모처에서 대학생들과 만났다.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등 8개 대학 총학생회연합이 주최한 '2025 대학생시국포럼' 참석해 자리를 빛낸 것이다.
총학생회 측은 내부 회의를 통해 가장 이야기를 듣고 싶은 정치인으로 한 전 대표를 선정했고, 섭외하려고 연락했는데 한 전 대표가 흔쾌히 수락을 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토론회를 시작했다.
이날 행사는 토론회인 만큼 내부는 제법 엄숙하고 차분했다. 20~30명가량 되는 한 전 대표 지지자들이 일렬로 선 채 '한동훈 화이팅!!'이라고 적힌 새빨간 프랜카드를 흔들며한 전 대표를 열렬히 응원하던 외부와는 상반된 분위기였다.
한 전 대표는 이날 베이지색 니트와 청바지, 하얀색 스니커즈 차림의 소탈한 모습으로 단상에 올랐다. 이날 현장에는 대학생 150여 명이 참석했으며 고동진, 김상욱, 김소희, 박정훈, 배현진, 우재준, 진종오, 한지아 의원 등 친한계 의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한 전 대표는 학생들과 토론 시작 전 강연을 통해 12.3 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며 가장 먼저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후 계엄 사태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진솔히 털어놨다.
그는 "대한민국은 지난 12월 이래 뜨거운 겨울을 겪었다. 우리는 모두 계엄이라는, 앞으로 어쩌면 100년 동안 있을 지도 없을 지도 모를 큰 사건을 함께 겪은 동지애를 나눈 세대"라면서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대통령을 배출한 여당을 대표했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겪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운을 띄웠다.
한 전 대표는 "대통령은 자유주의를 지키기 위해 계엄을 했다고 했지만 저는 계엄이 자유민주주의를 파기했다고 생각한다"며 "제가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국가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최소화하는 거다. 그렇기에 이번 계엄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때 제가 계엄을 막으려고 나서는 순간 '엿됐다'고 생각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지만 결과가 좋을리가 없지 않느냐"며 "묻어갈 수도 있었지만 앞장 선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엄이 해제될 것 같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만약 그날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으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을 거다. 여러분과 같은 또래의 군인들과 충돌해 유혈 사태가 났을 거다. 그러면 7080세대가 이뤄온 성취는 완전히 끝나게 되는 것"이라며 "저는 그게 두려웠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계엄을 막는 과정에서 결과론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면서 "그렇지만(유혈사태를 두려워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계엄을 막았다. 그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개헌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 전 대표는 "1987년 이래 헌법에는 계엄과 탄핵 (내용이) 계속 있었다. 그걸 몇 십 년 동안 안 하다 몇 년 사이에 다 하고 있다"며 "이렇게 싸우다 주변 냄비니 곡괭이니 다 던지는 정글의 게임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시스템을 그대로 두면 상황은 더 잔인해지고 엄혹해질 것"이라며 "이번에 리더가 되는 사람이 (대통령) 임기 단축을 약속하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약 10분간의 강연 후 학생들과 질의응답이 진행됐다. 이번 계엄 사태 기간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계속 바꾼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한 전 대표는 "오해를 많이 받고 있었는데 계엄 당일부터 끝까지 제 생각은 바뀐 적이 없다"며 "처음에 탄핵을 막겠다고 했던 취지는 탄핵보다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자진 사퇴였다. 계엄을 한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는 생각은 바뀐 적이 없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냈던 탄핵안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북중러에 대한 외교 실패가 탄핵 사유였다"며 "그걸 가결해줄 수 없었다. 친중 안 해서 탄핵한다? 그걸 보수 정당이 어떻게 동의하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 과정에서 여당 대표로서 걱정된 건 2차 계엄이었다. 계엄 실무자들이 직을 그대로 유지하면 군이 어떤 메시지를 받겠나.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 거다. 실무자들은 역전을 노려보고 싶지 않겠나"고 했다.
한 전 대표는 "그러나 대통령은 배제 요청을 며칠 동안 받아들이지 않았다. 책에도 썼지만 대통령은 저와 직접 만났을 때도 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랑 헤어지고 한 시간 뒤 받아들였다"며 "굉장히 의미 있는 성과였다. 2차 계엄 위험성이 상당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군에서도 당시 상황이 바뀌고 있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대통령은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을 천명했다. 그런데 당초와 다르게 12월 12일 조기퇴진안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발표했다"며 "그렇게 윤 대통령이 군 통수권을 가지고 있으면 군이 다시 동원될 수 있고 수사기관이 체포를 시도하면 공권력이 충돌할 수 있어 직무집행 정지를 어떻게든 서두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탄핵안에는 북중러 외교 실패라는 탄핵 사유가 빠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전 대표는 "제가 일관성이 없던 것이냐.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불법 계엄이 아니다' '대통령이 그럼에도 직무를 계속해야 한다'라는 입장으로 바뀐 게 아니지 않느냐.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질서 있는 조기 퇴진으로 대통령이 물러나 있는 상태에서 선거를 준비해 탄핵보다 먼저 선거를 치르자는 뜻이었다. 그러면 지금보다는 혼란이 덜 하지 않겠느냐"며 "한계는 있었다. 야당이 그걸 용인하겠나. 그러나 저는 그걸 시도조차 안 하고 탄핵하는 거랑 최대한 노력한 후 어쩔 수 없이 탄핵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학생이 지난 12월 8일 한 전 대표가 한덕수 총리와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받아 행사하겠다고 한 건 어떤 배경에서 였는지를 묻자 한 전 대표는 "권력을 이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며 "조기퇴진의 핵심은 대통령이 2선 후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 총리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어 "총리와 당 대표가 당정 협의 내용을 발표하는 건 원래 굉장히 많이 한다"며 "이걸 보고 (권력 이양을 하려고 한다며) 비판을 하니 당시에는 이건 너무 '억까(억지로 까내리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계엄 사태 외에도 지역 균형 발전, 연금개혁, 과학기술 분야 지원, 트럼프 관세정책, 대학교 등록금 인상 등 현안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토론회가 끝난 후 많은 학생들이 우르르 앞으로 나가 한 전 대표와 사진을 찍고 책에 사인을 받으면서 마치 팬 사인회 현장을 방불케 했다. 이 과정에서 한 학생이 한 전 대표의 사인이 적힌 종이를 한 전 대표 앞에서 찢어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나 이 대학생은 한 전 대표를 '친중 좌파'로 오해하고 실망과 항의의 표시로 사인 종이를 찢었으며 이후 오찬 자리에서 한 전 대표와 대화하며 오해를 풀고 다시 사인을 받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