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시 보건소 업무대행 치과의사 김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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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봄에 서울의 외곽 지역에 ‘김영수 치과의원’으로 개업을 했었다. 중산층이 주로 사는 주공 아파트 단지 안의 상가에서 개원의로서의 첫발을 디뎠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환자나 보호자와 말하기 좋아했던 필자는 진료를 통해 돈을 버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걸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환자를 그리 많이 진료하지는 않았고 토요일도 일찍 마치는 그런 치과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회(區會)’에 나가서는 말하기 좋아하는 필자 혼자 ‘특이한’ 주장을 하는 편이라 함께 모인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들은 듣는 과정에서 불안(?)하면서도 가끔씩 속 시원한 이야기를 하는 필자를 아껴 주는 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필자를 좋게 평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독자분들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초 개원 3년차를 맞이하면서, 개원 당시 빚을 내어 할부로 구매했던 장비 대금이 거의 갚아지면서, 이제 필자 가족도 ‘돈을 버는’ 일만 남은 것 같은 ‘자만심’이 막 생겨나는 시기에, ‘담당 세무서에서 현장실사를 나왔다.’고 세무서 직원 두명이 원장실로 들이닥쳤다.
분명히 세무신고를 제대로 했는데 하면서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필자의 개원치과가, 구에서 ‘세무조사 대상자’로 선정(?)되어 세무조사를 나왔다고 한다.-당시에는 중앙부처가 아닌 담당 구 세무서에서 세무조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분명히 필자가 잘못한게 없을 것이라 자신만만해하며 조사에 응했다.
마침 해당 세무서에는 친척이 근무하고 있어 도움이라도 받을까 하여 전화를 해 보았더니 당일 결근이라고 했다. 별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튿날 출근했더니 압수해간 치과 장부를 분석해 보고 상당한 추징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세무사 입회 하에 자세히 물어 보았다. 그 당시에는 치과가 번 총매출액을 신고한다기보다는 인근 치과의 수준에 맞게 신고하는 추세였다. 그래서, 세무사는 필자가 신고하라는 금액에서 일부를 누락시키고 평균치에 맞게 신고했다고 한다. 바로 그 차액이 ‘신고 누락금액’으로 발견된 것이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 것은 ‘하필이면 왜 내가 세무조사대상자가 되었을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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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있기 전, 옆의 구(區)에서 개원하고 계셨던 고등학교 선배분(치과의사)이 낮에 전화를 걸어 세무신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주변과 동떨어져 곧이곧대로 신고하면 피곤해진다는 ‘경고’를 해 주셨다.
‘아니 제가 번 것 그대로 신고해 보았자 얼마 안 되는 금액인데 그냥 신고하겠습니다.’라고 통화를 마친 기억이 있었다. 심지어 세무조사 이틀 전에는 세무서 직원 가족이 치과에서 간호조무사와 말다툼을 벌이고 돌아간 일도 있었다. 이런 일들이 ‘전조 증상’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퍼즐이 맞추어지질 않았다.
가족들의 도움으로 엄청난 추징금을 납부한 후로 한동안은 그냥 사람 만나기가 싫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보다 못한 처형 부부가 필자 부부를 데리고 미국 여행을 다녀오자고 했다. 또 돈이 들텐데 하면서도 당시 ‘이민’도 생각했는데 ‘여행’쯤이야 하면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여행 후 조금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고, ‘치과’라는 분야에서 필자가 ‘익숙하지 않았던’ 분야를 조금씩 공부해 나갔다. 공부가 재미있었는지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치과의 유지’는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이 싫은 증상은 여전했던 것 같다.
몇 년 후 어느 날, 예상치 않았던 환자가 찾아왔다. 과거에 필자의 치과에 세무조사를 나왔던 세무공무원 두 명 중의 한 명으로, 그의 부인이 필자와 근무하던 간호조무사와 다툰 예전의 그 세무서 공무원이 필자를 찾아와서 진료를 청했다.
속에서는 불길이 올라왔지만 모르는 척하며 구강검사를 마치고 치료계획을 설명하고나서, 현재 다니는 직장 근처에서 계속 진료를 받으라고 권하였다. 환자가 데스크를 떠나지 않고 ‘자신이 필자와 어려운 인연(악연?)이 있다.’고 말하면서 머뭇거렸다.
세무조사를 받았을 당시, 필자의 치과의원을 관할하는 세무서의 총무과장(관할세무서 서열 2위)이 필자의 처사촌오빠였다. 이 분이 세무조사 당일에는 전날 음주의 여파로 몸이 아파 결근한 상태였고, 이틀 후 출근했더니 모든 일이 정당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어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까탈스러운 성격의 장인어른에게, 사촌동생 부부를 위해 권력을 사용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 불려가서 호되게 당하셨는지, 나중에야 지나가는 말로 사건의 내막을 알려 주었다.
그 당시 관할세무서에서 ‘세무조사자 명단’을 2-3 배수로 선별해서 구회장단에 가서 ‘세무조사 제외자’를 선택해 달라고 하면, ‘이 분들은 빼 달라’고 구회장단에서 부탁을 하면, 그 이외의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세무조사 대상자’로 당첨이 된다고 하였다.
구회장단에게 필자가 얼마나 밉게 보였으면- ‘이 친구는 꼭 해달라’는 뉴앙스로 부탁하였다고 전하며, -개원 3년차에 세무조사를 당하느냐고 하는 이야기를 전화 수화기 너머의 사촌처남 목소리로 묵묵히 듣게 되었다. 물론 이야기를 전하는 분의 주관이 첨가될 수 있는 여지는 배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동안 선배가 선배 같지 않았고, 못난 필자의 눈치를 보느라, 전혀 관계없는 착한(?) 선배들은 한동안 만남을 꺼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개원 15년간을 버티고, 우여곡절 끝에 고대구로병원 예방치과 전속지도전문치과의사로 옮기면서 ‘세무서’와는 결별하는 느낌으로 ‘폐업’을 신고하였다.
그러나, 평생을 세금과 전쟁을 해야 한다는 격언을 흘려들으면 안 되었나 보다. 의료원에서 연말정산을 하면서 거의 한달치 급여를 추징금으로 납부하면서 누구는 ‘13월의 월급’이라고 하며 세금을 돌려받고 누구는 필자처럼 ‘추가 납부’를 하는 건지 의아해 하며 ‘절세 공부’를 이런저런 경험을 하면서 시작했다.
일단 몸을 깍아가면서까지 무리해가며 돈을 벌면 오히려 납부할 세금만 많아진다는 것을 배운 것은, 의료원 재직 시 -한참 인기가 있었던 시기였는지- 3개 대학의 외부 강의를 맡았던 적이 있는데, 연말 정산 후 한 곳에서 받은 1년치의 강사료 정도가 세금으로 환수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익분기점’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분명히 많이 벌고 많이 납부하면 좋은 일이지만 우리 몸이 상하는 일은 막아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식적, 비공식적 학회 회장을 맡으면서는 우선 몇 년간이 될지 모를 학회 활동 등을 대비해서, 적절한 ‘사업자등록증’을 신청하고 이를 통해 눈먼 돈들을 관리해 나갔다.
적금을 꾸준히 부어 5월의 종합소득세를 내는 필자가 안타까왔는지, 의료원 재직 시 은행 직원들이 IRP라는 것을 가입하라고 권해 주었다. 매년 얼마까지 납부하라고 은행에서 고지를 받고 그대로 하면, 연말정산 시 적지 않은(?) 금액이 혜택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이제는 필자가 휴대폰으로 마음껏 자금 운용을 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금년 2월 10일까지 사업장 현황신고 기간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1월 말일 추위를 견디면서 세무사 사무실을 찾았다. 작년 2월의 정년퇴직 후 필자의 근무 history를 설명해 주었더니, 세무사 사무실 직원은 “걱정 마세요, 아마 거의 비과세 수준일 겁니다,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연락드릴께요.”라고 머리가 하얀 치과의사를 다독여 주었다.
성경의 구절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가 이루어질 것이라, 필자가 예상한 금액 정도는 납부할 것이다. 예상한 만큼 내고 황당한 고지서는 받지 않을 자신이 있기에, 돌아오는 길의 추운 날씨가 그리 차가운 기운이 들지 않았다.
필자에게 ‘세금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동기를 제공해 주신, 과거의 선배님들께 감사할 뿐이다. 아마도 필자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에 그리하셨을 것 같다. 그럼에도 ‘오만한’ 후배에게 직접 경험이 아닌 간접 경험으로 가르쳐 주셨더라면 더 좋았었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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