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605)는 멘털리티의 역사에서 어떤 전환기의 문학적 기념비다. 중세만 하더라도 은유와 사실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아, 유사성이 곧 동일성의 증거로 통하곤 했다. 돈키호테는 그런 시대의 마지막 인물이다.
돈키호테는 비루먹은 말을 타고 소설로 들어가 늘어선 풍차를 거인으로, 양떼를 군대로, 농부의 딸을 귀부인으로 착각한다. 이렇게 저만의 이상(망상)을 좇아 현실을 떠나는 것을 ‘키호티즘(quixotism)’이라 부른다.
자신만의 세계 빠졌던 윤 대통령
극우 유튜브의 환상서 못 벗어나
주변엔 이익 위해 망상 돕는 이들
머릿속 구국 드라마 계속되는 듯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반국가세력이 사회 곳곳에서 암약한다”며 “국민 항전의지를 높일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이분은 현실을 떠나 가신들을 데리고 극우 판타지의 세계로 이주하신 듯”이라고 쓴 바 있다.
사실 키호티즘의 징후는 오래됐다. 작년 삼일절과 광복절 기념사는 거의 6·25 기념사를 방불케 했다. 이미 그 시점에 대통령의 인식이 외교안보 라인의 소수 극우 분자들의 세계관에 경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 그에게 이 망상을 주입했을까? 내각도 반대, 대통령실도 반대, 당에서도 계엄에 반대했다. 비상계엄은 노상원-김용현과 같은 군부의 극소수 극우분자들이 기획하고 실행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자신을 유폐시켜 왔다. 중도를 쳐내고, 당 대표 쫓아내고, 자기가 세운 당 비대위원장마저 내치려 했다. 그 결과 주위에 기회주의자들만 남고, 그들의 아첨 속에서 벌거벗은 임금님이 된 것이다.
모두 등을 돌리니 믿을 것은 극우 유튜브뿐. 그러니 피곤한 영혼이 그리로 도피해 거기서 위안과 안정을 찾을 수밖에. 어차피 세계란 머릿속에 입력되는 데이터의 총체. 그렇게 극우 유튜버들의 환상이 그의 세계가 되어 버렸다. 망상은 현실과 만나 깨지기 마련이나, 정작 망상에 빠진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지부조화’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낸다. 가령 돈키호테는 거인으로 믿었던 게 풍차로 드러나자 ‘누군가 거인에 마법을 걸어 풍차로 만들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극우의 개표조작설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잘하고 있다, 그러니 선거에 이겨야 한다, 질 리가 없다. 그런데 결과가 참패라면? 그건 누군가 투표함에 마술을 건 것이다. 즉 개표가 조작된 것이다.
개인의 성벽(性癖)도 한몫했을 게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을 지지하던 검사 시절에 이미 김어준의 음모론을 굳게 믿었다. 당시 세월호 추모집회에 나온 그와 나눈 대화를 누군가 공개했는데, ‘18대 대선은 부정선거’라고 하더란다.
이준석 의원은 국민의힘 대표 시절 그와 나눈 첫 대화를 매우 인상적인 것으로 기억한다. “대표님, 제가 검찰에 있을 때 인천지검 애들 보내 가지고 선관위를 싹 털려고 했는데 못하고 나왔습니다.”
키호티즘의 또 다른 원천은 매우 영적이다. 손바닥의 ‘王’ 자는 그냥 웃어넘기더라도 천공, 건진, 무정, 지리산 도사(명태균), 안산보살(노상원) 등 도사와 법사의 이름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이건 그냥 해프닝이 아니다.
돈키호테의 모험에는 시종 산초 판사의 조력이 필요하다. 산초 판사는 돈키호테와 망상을 공유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그에게 충실한 시종으로 남는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바로 그런 관계에 있다. 그중에서 홍준표 시장의 역할이 눈에 띈다. 그는 대통령과 계엄의 망상을 공유하지는 않으나, 대통령을 탄핵하는 데에는 반대한다. 심지어 탄핵에 찬성하는 의원들의 색출을 주장하면서까지 대통령의 모험을 응원한다.
기사문학에 낭만이 빠질 수 있겠는가. 돈키호테는 둘시네아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한다. 이 상남자 로망을 부추기는 우리의 산초 판사. “자기 여자 하나 보호하지 못하는 사람이 5000만 국민을 지킬 수 있겠나.”(홍준표)
홍 시장이 대통령을 비호한다는 것은 오해다. 국힘에서 누구보다 먼저 탄핵을 기정사실화한 게 바로 그다. 벌써 ‘조기 졸업’ 운운하며 이사 걱정하지 않는가. 그의 눈은 이미 돈키호테의 말과 갑옷에 가 있다.
산초 판사가 돈키호테의 망상을 거들고 나선 것은 주인이 그에게 어떤 섬의 통치권을 약속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산초 판사들이라고 다르겠는가. 서비스의 대가는 고립된 섬으로 전락한 TK의 공천권이다. 산초 판사는 점점 돈키호테를 닮아간다. 우리의 산초 판사들 역시 망상을 깨는 대신 그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 망상을 유지하기 위해 그걸 깨려 했던 이들을 당에서 쫓아내려 한다.
산초 판사의 엄호 덕에 우리의 돈키호테는 모험을 계속하기로 했다.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의 머릿속에서 구국의 드라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돈키호테처럼 그 역시 언젠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망상을 부정하게 될까?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