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장기 연체 채권에 대한 소멸시효 연장 횟수를 1회로 제한한다. 캠코가 인수한 연체 채권 대부분은 10여 년 내 소각돼 상당수 채무자가 빚 독촉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캠코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인수 채권 소멸시효 관리 규정 전면 개정안을 지난달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이 규정을 전면 개정한 것은 2006년 이후 19년 만이다. 개정안은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
개정안은 인수 채권의 소멸시효 연장 조치를 원칙적으로 1회로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추가 연장을 허용한다. 기존에는 소멸시효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연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취약 계층 채권 등 일부 예외 항목에 대해서만 연장을 하지 않았다. 이번 개정으로 연장 제한 규정의 큰 틀이 일종의 포지티브 방식에서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면 바뀌는 것이다.
소멸시효는 한 번 연장할 때마다 만기가 10년 늘어난다. 연장 횟수를 1회로 제한하기로 한 만큼 캠코가 인수한 상당수 채권은 10여 년 내에 소멸될 것으로 전망된다. 캠코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소각하면 채무자는 빚 상환 부담을 완전히 덜게 된다. 캠코가 보유한 채권 중 20년 이상 장기간 상환이 이뤄지지 않은 규모는 2조 9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캠코 관계자는 “기존에는 시효 연장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다 보니 채권 시효가 사실상 만기 없이 유지된 측면이 있었다”며 “상환 가능성이 낮은데도 채무자가 추심에 시달리는 일을 막기 위해 제도를 개편했다”고 말했다.
캠코는 부모의 빚 등을 떠안은 피상속인의 빚 부담을 덜기 위한 특례 조항도 새로 마련했다. 피상속인 명의의 회수 가능한 재산이 없는 경우에는 인수 채권을 상각하는 방식이다.
이번 개정은 새도약기금 등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 채무 탕감 정책과 보폭을 맞추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새도약기금은 지원 기준을 7년 이상, 5000만 원 이하 연체 채권으로 뒀는데 캠코는 금액 기준을 별도로 두지 않고 빚 부담을 덜어주는 만큼 새도약기금의 제도 공백을 보완하는 측면이 있다.
금융권에서는 공공기관인 캠코에 추심 제한 제도가 도입된 만큼 민간 금융사에도 이를 주문하는 당국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얘기가 새어 나온다. 다만 반복적인 빚 탕감으로 도덕적 해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