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말을 걸어오다’
지친 초록들이 쓰러져 나부끼는 거리
자동차 바퀴에 휘말려 오르는 낙엽 다발들
한 해 동안 여로를 마치고
그 어느 제 곳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두른다
목과 허리가 잘린 바람의 잔해들
도시 건물 벽에 걷는 길이 가로막히자
서로 흩어지고 합치기를 반복하면서
찌든 세상을
유리알처럼 닦아놓는다
바람의 연주로 익어가는 가을,
그의 부음부음이 문자로 알려왔다
휴대폰에 저장된 산 자의 이름이
갑자기 망자로 바뀌는 순간
물끄러미 그의 이름이 나를 쳐다본다
목을 죄어올 듯 허무의 그리움,
무의미하게 보낸 하루를 매질해보지만
지워진 길을 다시 갈 수는 없다
그 길은 오직 나만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니 철학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신영규 시인의 시집 ‘바람도 꽃피는 계절이 있다’에서

신영규 <시인, 전북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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