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나라보다 많이 일하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 가난한 노인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나타난 한국 노인들의 현실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한국의 ‘일하는 노인’ 규모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도 가장 높다. OECD가 2022년을 기준으로 집계한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7.3%로, 2위인 아이슬란드(32.6%)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동시에 한국은 노인 빈곤율도 2020년 기준 40.4%로,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다. 일하는 노인 대부분이 저임금·불안정 일자리에 종사하는 탓이다.
특히 65~74세 전기 고령자 빈곤율(31.4%)보다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 빈곤율(52.0%)이 훨씬 높았다. 75세 노인 2명 중 1명은 평균 소득이 빈곤 기준선인 ‘중위소득 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을 밑돌고 있다는 의미다. 중위소득은 모든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세웠을 때 가운데에 위치한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한국 노인들의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과 빈곤율 뒤에는 다른 나라보다 빈약한 공적연금 제도가 있다. 은퇴 후 받게되는 연금이 워낙 적다보니, 일을 하지 않고는 기초적인 생계조차 어려운 것이다. 2020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소득 중 공적이전소득(연금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30.0%로, OECD 평균(57.3%)의 절반 수준에 그친 반면 노동소득 비중(48.6%)은 OECD 평균(25.5%)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국 연금 제도가 선진국보다 빈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은 제도 도입 자체가 늦은 영향이 크다. 20세기 초반 연금 제도의 골격을 갖췄던 서구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1988년에야 국민연금 제도를 도입했다. 전국민 대상으로 국민연금이 확대된 건 1999년이 되어서였다. 당시 만 50세를 넘었던 현재 75세 이상인 노인들(1949년 이전 출생자)은 노령연금 최소 가입기간(10년)조차 채우기 어려웠다.
‘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현 세대 노인들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2014년 소득 하위 70% 노인를 대상으로 기초연금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2017년 20만원이었던 기초연금 수급액도 2024년 33만원으로 빠르게 올랐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연구원이 추정한 노후 최소생활비(개인 124만3000원)에는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0년을 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후기 고령자가 되는 10년 뒤 쯤엔 노인 빈곤율도 일부 개선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베이비부머 세대 내부 격차는 여전하다는 점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국민연금은 노동시장에서의 지위를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자영업자나 지역가입자의 수급액은 임금노동자의 5분의 1 수준에도 못미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연금체계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기초연금은 노후 최저생계비 보장이라는 역할에 충실하되, 정부 재정을 재원으로 하는 만큼 정액 지급보다는 취약계층에게 더 많이 지급하는 것이 적절해보인다”며 “반면 기금으로 운영되는 국민연금은 더 낼수록 더 받는 소득 비례 원칙에 따라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