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 누구와 어떻게 사실건가요

2025-03-14

올댓시니어

드라마를 보면서 시대 변화를 느낄 때가 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방영된 ‘한 지붕 세 가족’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당시에는 주택이 부족해서 한 지붕 아래 여러 가족이 모여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고령 부모와 성년 자녀가 흩어져 살면서 ‘딴 지붕 한 가족’이 됐다. 인구는 이미 줄어들기 시작했는데, 가구는 아직 늘어나는 추세다.

2022년 방영된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에서 진양철 회장이 가구 회사 사장에게서 보고를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에서 회장이 영업목표를 묻자 가구 회사 사장은 “출산율, 혼인가구 비율이 매년 눈에 띄게 낮아지고 있어 영업목표를 보수적으로 잡았습니다”라고 한다. 그러자 진양철 회장은 “사람 머릿수는 줄어도 1인가구 수는 늘어난다. 집집마다 겨우 팔던 소파를 방방마다 1개씩 팔아먹는 세상이 온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가구 수 증가를 주도한 것은 1~2인 가구다. 2000년부터 2025년까지 25년 동안 총 788만 가구가 늘어났다. 가구원수 별로 증감 현황을 살펴보면, 홀로 사는 가구가 590만, 둘이 사는 가구가 385만이나 늘어난 반면, 셋 이상 함께 사는 가구는 187만이나 줄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25년 동안 가구 수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통계청의 장래가구추계에 따르면, 2025년부터 2050년 사이에도 122만 가구가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25년 동안 788만 가구가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증가 속도가 크게 둔화한 셈이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로 달리던 자동차가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접어들어 시속 30㎞로 달리는 상황과 비슷하다. 가구원 수별로 증감현황을 보면, 1인 가구와 2인 가구는 각각 157만과 173만이나 늘어난 데 반해 3인 이상 가구는 208만이나 줄어든다.

가구주 연령에 따라 가구 수 증감을 살펴보면 어떨까. 향후 25년 동안 65세 이상 고령가구는 561만이 늘어나는데 64세 이하 가구는 439만이나 줄어든다. 전체 가구 수 증가를 고령가구가 주도하는 셈이다. 1인 가구의 경우 고령가구는 259만 가구가 늘어나는 데 반해 64세 이하 가구는 102만 가구가 줄어들 전망이다. 2인 가구도 고령가구는 259만이 늘어나고 64세 이하 가구는 86만이 줄어들 전망이다. 향후 25년 동안에는 가구증가는 고령 1~2인 가구가 주도하는 셈이다.

은퇴를 앞둔 직장인이라면 한번 상상해보자. 은퇴 이후 자녀와 한 지붕 아래서 얼굴 맞대고 살고 있을까. 고령 부모와 성년 자녀가 동거하는 일이 많지 않다. 통계청이 2021년 실시한 사회조사에서 고령자에게 자녀와 함께 사느냐고 물었더니, 응답자 열 명 중 세 명(27.2%)만 ‘그렇다’고 답했다. 향후 자녀와 같이 살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네 명 중 세 명(75.7%)이 ‘따로 살고 싶다’고 했다. 자녀와 떨어져 사는 고령자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고령가구 중 혼자 또는 둘이 사는 가구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떨어져 살면 관계도 소원해지기 마련이다. 이렇게 한 번 물어보자. 앞으로 부모님을 뵐 날, 자녀와 만날 날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물으면 10년, 20년, 30년이라고 답하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 않다. 일 년에 부모와 자녀가 몇 번이나 만날까? 한 달에 한 번을 만나면 12번이다. 부모의 기대여명까지 20년 남았다면, 앞으로 부모와 자식이 만날 수 있는 횟수는 240번이다. 멀리 떨어져 살면 일 년에 서너 번 만나기도 힘들다. 그러면 부모님 뵐 날, 자녀와 만날 날은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

은퇴 후 자녀와 떨어져 산다면 어디서 살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대다수 은퇴자가 살던 집에서 계속 살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집을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여기지만, 고령자에게 집은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소다. 고령자에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고가 낙상인데, 고령자 낙상사고의 74%가 집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균형감각이 저하되고, 근력과 골밀도가 감소한다. 그래서 작은 충격에도 크게 다칠 수 있다. 욕실과 주방처럼 물을 사용하는 곳은 바닥에서 미끄러지기 쉬워 낙상의 위험이 크고, 카펫이나 매트가 제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휠체어나 보행보조기를 사용하는 고령자에게는 높은 문턱과 좁은 복도가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조명이 어두운 공간도 문제다. 나이가 들어 시력이 약해지면 조도가 낮은 공간에서는 물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넘어질 수 있다.

살던 집에서 계속 살려면 생활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줄여야 한다. 문턱을 없애고, 욕실과 화장실에 미끄럼 방지 바닥재와 안전 손잡이를 설치하고, 밝은 조명과 자동 조명 시스템을 설치해서 야간 이동시 안전을 확보한다. 자주 사용하는 물건을 손이 닿기 쉬운 곳에 배치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주거 환경 개선은 고령자가 자립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노후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까. 부모와 떨어져 사는 자녀는 부모님이 노후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은퇴 전에는 월급으로 생계를 꾸리겠지만, 은퇴 후 월급이 사라진 상황이 달라진다. 통계청은 2002년 혼자 사는 고령자의 94.1%가 연금을 수령하고 있는데, 월평균 연금 수령액은 58만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개선 되지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2024년 11월 기준 노령연금 수급자의 월평균 수급액은 약 66만원에 불과하다.

국민노후보장패널조사에 따르면, 개인이 노후생활을 하는데 최소 월 136만원은 있어야 하고, 월 192만원이 있어야 적정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부족한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까. 2023년 현재 혼자 사는 고령자의 생활비 마련은 스스로 마련하는 비중이 49.4%로 가장 많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 60대 후반의 혼자 사는 고령자 중에서는 스스로 생활비를 마련하는 비중은 66.6%나 됐지만, 70대는 53.6%, 80세 이상에는 32.4%로 크게 하락했다. 대신 자녀와 친척에게 의존하는 비중은 60대 후반 6.7%, 70대 16.4%, 80세 이상 26.2%로 갈수록 늘어난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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