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심의 절차가 31일 시작됐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날 최저임금위원회에 2026년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함에 따라 최저임금위는 90일 이내에 심의·의결을 마치고 최종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결정된 올해 최저임금은 1만 30원으로 사상 처음 1만 원대에 진입했지만 인상률은 역대 두 번째로 낮은 1.7%였다. 노사 양측이 요구하는 최저임금 인상 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노동계가 고율 인상을 요구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내수·수출 동반 부진과 고환율 부담, 대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인건비 가중 등 동시다발적 경영 악재에 직면해 임금 인상 폭을 최소화해야 하는 기업들과는 온도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강성 노조와 경영계가 힘겨루기와 파행을 반복하다가 막판 ‘졸속 흥정’으로 결론을 내리는 구태가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각 9명이 참여하는 심의를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현행 심의 체계로는 소모적인 노사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오죽하면 1988년 현행 심의 체계를 도입한 이래 노사 합의에 따라 최저임금이 결정된 것이 7차례뿐이겠는가. 강성 노조인 민주노총은 이미 6월 최저임금 투쟁 일정을 공표하고 강경 노선을 예고하고 있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이 기업 경쟁력 약화와 소상공인 줄폐업을 초래해 결국 국내 일자리를 없애고 서민 생계를 위협한 경험을 했는데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계엄·탄핵 정국과 글로벌 관세 전쟁 등으로 우리 경제가 심각한 위기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반복되는 노사 갈등과 고임금의 덫에 갇혀서는 저성장 늪에서 탈출할 수 없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일본·대만·홍콩보다 높아 아시아 최고 수준이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일자리를 지키는 성장·고용의 선순환을 이루려면 낡은 제도를 개편해 합리적이고 유연한 임금 결정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독립된 전문가 그룹이 거시경제 지표, 생산성, 업종·지역별 여건 등을 두루 감안한 객관적·경제적 근거에 따라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저출생·고령화와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