쇳물은 멈추지 않는다
박정희 ‘유언’을 지키다, 박지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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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2일. 포스코의 건설 대역사가 장장 25년 만에 대미를 장식한 날이다. 광양제철소 운동장에서 종합준공식이 열렸다. 눈이 부시도록 푸른 가을 하늘이었다.
이날 행사에 노태우 대통령도 참석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9월 중순에 민자당을 전격적으로 탈당한 그는 중국과 유엔을 방문했다. 그러나 나는 두 번 다 공항에 나가지 않았다. 민자당도 떠나고 정치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노 대통령과 마음속으로 거리감을 두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역사적인 날만은 웃는 얼굴로 보내려 했다.
노 대통령이 축사를 했다. 세계 철강 역사상 빛나는 금자탑을 세웠다고 포스코와 나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나는 단상에 앉아 허공을 바라보았다. 25년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유명을 달리한 동지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연(鳶)처럼 저 멀리 어른거렸다. 그 좋은 날에 하마터면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종합준공식이 끝난 뒤 나는 곧바로 광양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마음속으로 정해 놓은 행사가 따로 있었다.
이튿날 나는 아내와 비서실장인 최재욱 의원을 데리고 국립묘지로 갔다. 박지만군과 근영씨가 동행했다. 검은 양복을 입고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 앞에 선 나는 가슴에 품어 온 두루마리를 펼쳤다. 고인에게 올리는 마지막 보고였다.
두루마리를 읽어나가면서 나는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