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하며 성매매∙마약…3000명 감금, 단속 알고 떴다" [캄보디아 범죄단지 르포]

2025-10-16

‘최근 여자아이와 여성을 통한 마약 밀반입 함정 수사가 많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지금부터 여자아이를 데리고 웬치(园区)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며… 상황에 따라 둘째 형님에게 보고…’

최근까지 중국인 범죄조직의 거점으로 쓰인 캄보디아 범죄단지 ‘웬치’. 경비실로 추정되는 건물 한켠에 모서리가 찢어진 종이가 붙어있었고, 중국어로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범죄 조직원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공지문’이었다. 수도 프놈펜 도심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센속 지구 주택가 한복판에 있는 이 웬치는 원래 13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고급 주택이 많은 ‘사쿠라 단지’ 안에 있어 조성될 당시만 해도 많은 주민이 선망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인 범죄조직이 건물을 점유하면서 모습도 달라졌다. 지금은 약 3m 높이의 담장에 둘러싸여 있고, 담장 위엔 날카로운 철조망이 겹겹이 설치됐다. 그리고 아파트 외벽엔 안에서 밖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인 듯, 빽빽한 쇠창살이 처져 있었다. 16일(현지시각) 만난 현지 주민은 이곳에서 지난 7월까지 조직적인 성매매와 마약 범죄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담장 한쪽 두꺼운 철문. 성인 남성의 얼굴 높이에 감옥에나 있을 법한 작은 창이 뚫려 있었다. 창 안으로 직접 머리를 넣어 안을 들여다보니 마당에 버려진 식탁과 의자 등 생활의 흔적들만 남아 있었고,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옆 주택에 사는 리 소파니스(29)는 “처음엔 철조망도 철문도 없는 평범한 건물이었는데, 중국 조직이 들어오고 1년도 채 안 돼 이렇게 바뀌어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단속이 오는 것을 전날 미리 알고 먼저 컴퓨터 등을 챙겨 다 떠났다”고도 했다.

동네 주민 시엠 레아카나(35)도 “여성을 성매매와 마약 운반책으로 동원했던 조직이라는데, 7월에 갑자기 사라졌다”며 “중국인 여자가 많이 잡혀 왔고 밖에 걸린 빨래도 거의 다 여성 옷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시설 안에서 나오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구조였다”며 “경찰이 수사 전에 정보를 흘려준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찾은 또 다른 웬치 ‘원구 단지’ 역시 지난 7월 범죄조직이 철수하며 텅 빈 상태로 남아 있었다. 6층짜리 건물 4개 동으로, 운영 당시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단지 앞 노점상 디엣은 “여기 사람들은 밖에 나오지도 않고, 누가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정부 대응팀도 웬치 방문…캄보디아행 출국 제지

캄보디아에는 이처럼 인신매매·구금·사기 등 각종 범죄가 벌어지는 웬치가 최소 53곳 이상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날 캄보디아에 도착한 정부 합동 대응팀은 이날 오후 현지 경찰과 함께 캄보디아 따께오주(州)에 있는 웬치를 찾아 상황을 점검했다.

대응팀과 함께 이곳 웬치 건물 중 하나에 들어가 보니, 조직원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이는 침대와 옷가지 등이 남아 있었다. 방마다 침대가 3개씩 놓여 있었는데, 건물 6개 동에서 숙소로 쓰는 3개 층마다 방이 약 30개씩 있는 것으로 보아 3000명이 넘는 사람을 수용했을 것으로 보였다.

건물 1층에는 범죄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업체의 광고도 버젓이 붙어 있었다. 광고에는 중국어로 ‘주문 조작, 코인 탈취 등 다양한 작업을 접수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건물 다른 곳에선 한자로 ‘복(福)’이라고 쓴 붉은 종이가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운색 커튼이 쳐진 사무실이 나왔다. 문 옆 벽에는 1부터 48까지 번호가 붙은 휴대전화 보관함이 있었다. 안에는 책상과 의자 수십 개가 쌓여 있었고 한쪽에 에어컨과 미니 냉장고, 전선 등도 있었다. 캄보디아 경찰 관계자는 “범죄에 사용한 물건이라고 보고 수사 중”이라고 했다.

박성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현장을 둘러본 뒤 취재진에 “국민 보호를 위해 양국이 합동범죄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범죄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경찰을 추가로 파견할 수 있게 하겠다”며 “설치 합의는 된 것 같고, 구체적 운영 방안은 외교부, 국가정보원, 캄보디아 당국과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 본부장은 “구금된 국민의 조기 송환도 합의한 상태에서 세부적인 법적 절차를 논의 중”이라고 했다.

대응팀 단장인 김진아 외교부 제2차관은 “현재는 건물 사진과 영상, 여권 사본 등을 정확하게 봐야 해서 피해자 본인이 신고하게 돼 있지만, 합동 TF를 운영하면 여러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차관은 이날 오전 훈 마넷 캄보디아 총리와의 면담 결과와 관련해 “캄보디아 총리도 조속한 송환을 추진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당국은 이날 “사기에 연루된 한국인 59명을 내일(17일) 한국으로 추방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국내에선 경찰이 범죄에 연루될 우려가 있는 캄보디아행 출국을 자제시키고 있다. 인천국제공항경찰단에 따르면 경찰은 전날 오후 7시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탑승 게이트 앞에서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타려고 한 30대 남성 A씨를 제지했다. A씨는 경찰에 행선지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고, 경찰은 범죄 연루 가능성을 우려해 A씨 출국을 막았다.

한편 지난 8일 캄보디아 인접 베트남 국경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 한국인 30대 여성 B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은 수사에 착수해 사망 경위 및 범죄 연루 가능성 등을 확인할 방침이다.

프놈펜·따께오(캄보디아)=이영근 기자, 임성빈 기자 lee.youngk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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