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트리거 60' ㊾ 다종교 사회

종교는 세상을 초월하는 진리를 추구한다. 하지만 ‘지상의 종교’는 번잡한 속세와 떨어져 존립할 수 없다. 종교도 사회와 교류하며 다양한 얼굴을 내보인다. 한국의 종교는 특히 그렇다. 격동의 현대사와 맞물리며 시대의 굴곡과 함께해 왔다.
해방 후 한국 사회에는 격랑이 몰아쳤다. 한국의 종교도 무풍지대가 아니었다. 크게는 산업화의 그늘을 어루만지고 민주화의 열망을 끌어안았다. 때론 정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다종교 국가다. 오랜 불교 문화권에 조선 후기 기독교가 유입되고, 개화기 민족종교도 일어나면서 ‘종교박물관’ 양상마저 띠었다. 반면에 종교 간 분쟁이나 갈등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2024년 현재 한국 종교 인구(한국리서치 조사)는 개신교 20%, 불교 17%, 천주교 11%다. 종교가 없다는 사람이 51%였다.
해방 직후 한국의 종교는 ‘미약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학계에서는 당시 전체 종교 신자가 인구의 10% 미만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절반 가까이 종교를 가진 요즘에 비하면 5분의 1 수준이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종교인을 투옥하는 등 탄압했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의 종교가 쇠퇴했다.
해방 정국과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아우르는 기독교가 빠르게 성장했다. 북한의 기독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대거 월남했다. 6·25가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 개신교도 약 20만 명 중 7만~10만 명이 남한으로 내려왔다. 미 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이들의 종교 활동을 뒷받침하며 자유민주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려 했다. 미 군정은 또 미국인 선교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자연스레 기독교 계열 인사들이 다수 군정에 참여하게 됐다.
크리스마스 이어 석탄일 공휴일 지정
불교도가 기독교도보다 많았던 1949년에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됐다. 이승만 대통령이 기독교도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쟁 중이던 51년엔 ‘군종 제도’를 도입해 군대 안에 목사와 신부를 두고 종교 활동을 하게 했다. 군인 중 기독교인 비율은 군종 제도를 도입한 51년 5%에서 5년 뒤 15%로 늘었다(강돈구, 『미 군정의 종교정책』).
불교는 이런 혜택을 받지 못했다. 석가탄신일이 휴일이 되고 군승 제도를 도입한 것은 박정희 정부 들어서였다. 기독교는 전후 복구를 위한 원조 물자와 교육·의료기관 운영에도 적극적이었다.
이 시기 불교는 혼란과 갈등을 겪었다. 불씨는 일제가 뿌렸다. 한국 불교를 왜색으로 바꾸려 했다. 친일 성향의 주지를 임명하고, 승려의 결혼을 장려해 대처승을 늘렸다. 광복 후 한국 불교는 두 쪽으로 갈렸다. 결혼한 대처승과 독신 비구승의 싸움이었다. 한국 불교 전통을 회복하려는 비구승과 절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대처승이 충돌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사찰 마당에 아기 기저귀가 널린 것을 보고 놀라 “이게 뭐냐”고 물었다는 일화도 있다. 일본처럼 대처승이 많다는 답을 들은 이승만은 54년부터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불교 정화’를 내용으로 한 유시(諭示·국민에게 당부하는 문서)를 발표했다. ‘처자식을 거느린 사람들은 승려가 아니므로 사찰에서 물러나라’는 문구까지 있었다. 이후 한국 불교는 비구승 중심의 조계종이 주도권을 잡았다. 70년에는 조계종과 태고종(대처승)으로 종단이 아예 나뉘었다.
박정희·전두환 정부 때는 산업화와 민주화가 종교 성장의 자양분이 됐다. 60년대 산업화 정책으로 농촌 인구가 대거 도시에 유입됐다. 이주민들은 생존 경쟁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다.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 빈부 격차는 불안과 불만을 증폭시켰다. 송재룡(종교사회학) 경희대 특임교수는 “박탈감을 해소하거나 보상할 수 있는 자원을 교회가 제공했다”며 “일종의 피난처이자 공동체적 역할을 수행하며 교회가 가파르게 성장했다”고 말했다. 개신교는 또한 노동 문제를 해결하려고 현장에 뛰어들어 ‘도시산업 선교’ 활동을 펼쳤다.
개신교 신도 수는 60년대 초반 74만 명에서 80년 718만 명으로, 같은 기간 교회 수는 6800개에서 2만1200개로 급증했다(윤승용, 『현대 한국 종교문화의 이해』). 시간이 좀 더 흐른 90년대 초반,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교인 수가 70만 명에 달해 ‘세계 최대 단일 교회’로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였다.

천주교는 가톨릭농민회를 중심으로 농민 운동을 전개했다. 민주화 운동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그 복판에 ‘시대의 어른’으로 추앙받은 김수환 추기경이 있었다. 87년 6월 항쟁 때 서울 명동성당으로 시위대를 쫓아온 경찰들을 “나를 밟고 가라”며 막아섰다.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가 됐다. 지금도 “한국 천주교는 김수환 추기경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호국 전통을 지닌 불교 역시 민주화 대열에 동참했다. 80년 ‘서울의 봄’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 스님은 전두환 지지 성명에 반대하고 5·18 광주 현장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했다. 신군부는 그해 10월 27일 군경 합동 병력 3만2000여 명을 투입해 승려를 연행하고 심지어 고문까지 했다. 이른바 ‘10·27 법난’이다. 당시 고초를 겪은 이들이 1929명에 달한다.

기독교의 성장은 대형집회에서도 확인됐다. 73년 5월 30일부터 닷새간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 전도 집회에는 총 320만 명, 마지막 날 당일에만 110만 명이 운집했다. 84년과 89년 두 차례에 걸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한과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은 한국 천주교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2027년에는 교황 레오 14세가 방한할 예정이다.

불교는 극심한 경쟁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로 유명한 성철 스님과 베스트셀러 수필집 『무소유』를 집필한 법정 스님 등이 불교 중흥에 기여했다. 2000년대 이후 명상에도 집중하며 현대인의 ‘마음공부’를 돕고 있다.
원불교, 교육·환경·복지 활발한 활동

1916년 소태산 대종사 박중빈이 설립한 원불교도 한국 4대 종교로 꼽히게 됐다. 51년 원광대를 설립하고, 보육원·양로원·병원 등을 운영했으며, 민주화 시기에는 환경·여성·장애인 운동을 통해 생활 속으로 파고들었다.

종교 성장의 뒤에는 그림자가 있었다. 종교의 대형화·세속화가 사회 이슈가 되기도 했다. 교회 세습·승계 과정의 분란, 물질주의를 앞세운 기복신앙화 경향이 문제로 지적됐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신도 수에 따라 교회와 사찰을 사고파는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국내 종교는 해방 후 2000년대까지 약 60년간 성장세를 유지했다. 속도에 지친 한국인에게 안식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종교인은 조금씩 줄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05년 전 국민의 53.1%였던 종교인 비중은 2015년 43.9%로 떨어졌다. 교단·종단의 성직자도 전반적으로 감소세다.

탈종교화 흐름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다원화 사회와 과학기술의 발달은 절대자에 대한 신앙을 약화하는 요소다. 종교 간 갈등을 부추기고 세속 정치에 집착하는 일부 종교인들의 극단적 행태 역시 종교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종교의 의미는 여전하다. 현대인, 특히 젊은 세대들이 물질에 빠져 종교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명상이나 묵상 같은 영성 활동에 대한 관심은 계속 커지고 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무한한 존재에 대한 희구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조건일 수 있다. 인공지능(AI)의 대습격 앞에 선 현대인의 불안 또한 향후 주요한 이슈로 예상된다.
현실적인 과제도 있다. 한국 종교와 정치의 명확한 정체성 찾기다. 헌법 20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을 명시했다. 48년 제헌헌법 때부터 내려오는 조항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늘 혼란스러웠다. 정치는 종교를 활용해 지지기반을 확보하려 했고, 일부 종교인은 정치와 손잡고 세를 불렸다.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지 않고, 사회가 종교를 걱정한다’는 말마저 나왔다. 이념과 진영 대립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통합과 이해’라는 종교의 기본 정신이 더욱 절실한 이유다.
창간 60주년 기획 '대한민국 트리거 60'은 아래 링크를 통해 전체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은 ‘8·3 사채동결 조치’ 편입니다.

![[연해주가 부른다] 한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연해주](https://www.usjournal.kr/news/data/20251113/p1065612393303160_602_thum.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