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사업부와 스마트폰 사업부의 각자도생. 삼성전자가 지난 11일 공개한 사업보고서에는 삼성전자 양대 사업부의 고민이 드러나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모바일 AP(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 매입에 지출한 금액은 10조9326억원. 갤럭시폰 등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경험(MX) 사업부의 지난해 영업이익(10조6000억원)보다 많았다.
스마트폰AP 외부 조달에 10조…영업이익보다 많아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생산 역량을 모두 갖춘 종합반도체 회사지만, 칩 성능과 수율(양품 생산 비율) 문제로 자체 칩과 외부 칩을 혼합해 사용해 왔다. 그러다 올해 갤럭시S25에는 전량 외부 칩을 사다 썼다. 퀄컴이 설계하고 대만 TSMC가 생산한 AP다. 올해 삼성전자의 AP 매입 비용은 지난해보다 더 증가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LSI 사업부는 사업 부진 문제로 지난 1월부터 경영 진단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삼성의 반도체 설계 문제가 스마트폰 사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모바일AP는 스마트폰 부품 단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원가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 업계에 따르면 갤럭시 S25에 탑재된 퀄컴 ‘스냅드래곤 8 엘리트’ 칩 단가(약 190달러)는 아이폰16 ‘A18’ 칩(약 45달러)의 4배에 달한다.
애플 최신 칩셋, 싸고 고성능 비결은 ‘칩 비닝’?

이같은 차이는 칩 설계 능력에서 비롯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애플은 칩 비닝(Chip binning, 칩 보관) 방식을 활용해 수율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칩 설계 단계부터 하나의 칩으로 여러 제품 라인업에 적용하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컷칩’이라고도 불리는 칩 비닝은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칩의 일부 코어(core, 연산을 수행하는 유닛)가 성능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이를 폐기하지 않고 저사양 제품 등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일례로 아이폰16 프로(고급형), 아이폰16, 아이폰16e(보급형)에는 모두 A18 칩이 탑재되지만, 칩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코어 수는 각각 6개, 5개, 4개로 차별화했다. 코어가 많을 수록 칩의 성능이 좋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A18 칩 하나만 생산하면서도 칩 비닝을 통해 수율을 높이고 원가도 절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애플은 맥북프로와 맥북에어에 탑재되는 자체 설계 M 칩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성능 차이를 둔다. 반면 삼성전자 갤럭시폰은 양산형 칩을 납품받아 쓰기에 이러한 원가 절감 전략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칩 비닝은 인텔 등 CPU(중앙처리장치) 제조사들도 많이 활용했던 비용 절감 생산 방식”이라면서 “삼성은 엑시노스(자체 설계 칩)의 활용도가 낮아 이 전략을 적극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시스템LSI 사업부에 대해 “온디바이스 AI 기반 고사양 제품의 공급 확대를 추진하면서 2나노 엑시노스 샘플을 확보하는 등 미래 성장 지속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