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가려(民生可慮, 민생이 가히 염려스럽다) -②

2025-01-09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조선시대는 농업에 의존하는 바가 컸다. 세계사적으로도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인류는 농사나 축산에 의지하는 비중이 컸다. 서양은 농축업의 기본 틀인 봉건제에서 산업혁명 이후 기술발전에 따른 통상이 활발해 진데 견줘 동양은 기술발전에 늦어 세계사적으로 뒤처지는 역사를 맞게 되었다.

중세 왕권제도 시대에 민생이 어려워졌을 때 세종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에 대한 대처를 통해 세종의 정치 지도력을 알아보자. 백성의 먹고사는 일에 대한 배려의 발로인 ‘민생가려’로 재해가 다가오면 세종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순서와 시기를 고려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평시에는 논과 밭을 새로 일구고 저수지 등을 확충한 임금이 세종이다. 한 예로 지난 호에서 보았듯 밭에서 태종 4년 경기도를 빼고서도 25년 뒤 642,352결이 늘오나 그 증폭이 배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장마나 가뭄, 질병 등의 재해가 오면 처음으로 하는 일은 피해지역 조사에 들어갔다. 그다음 조치는 해당지역의 ‘조세 감면’이었다.

⋅조세를 감면하다

(사간원에서 흉작의 정도가 심한 주군의 조세를 면제할 것 등을 상소하다) 사간원에서 상소하여 아뢰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먹는 것은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온데, 이제 흉년을 만나 민생이 염려되오니 각 군의 조세를 경창(京倉, 관곡 창고)에 바치는 것을 빼고는, 곡식으로 거두어 각기 그 고을에 두었다가, 다음 해의 씨앗으로 예비하게 하고, 그 농사를 그르침이 더욱 심한 주·군(州郡)은 한 문제(文帝)의 고사(古事)에 따라 조세를 전부 면제하시기를 청하나이다. 그리고 왜적이 중국을 침범하여, 그 약탈한 재물을 가지고 우리나라 남쪽 지경에 와서 배를 대고 해변의 백성들과 교역한 지 오래되었는바, 지금 우리는 기근으로 재물이 없어 교역하지 못한즉, 왜적이 의식을 얻을 곳이 없게 되면 반드시 도둑질할 마음을 가지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전라도는 적이 들어오는 첫 길목이므로 방어가 매우 긴급하온데, 관찰사가 절제사를 겸임하게 되어 군비(軍備)가 점점 쇠퇴하여지오니…. 뜻밖의 일을 방비할 수 있게 하라고 아울러 발령하소서. 각종 과전(科田)은 3분의 1을 경기 밖의 외도(外道)에 주되, 수로가 가로막히고 거리가 먼 도에서는 모두 포백(布帛)으로 거두어 바치게 하되, ...그 규정을 어기고 과중하게 걷는 자는 소작인으로 하여금 관가에 고하게 하여, 그 밭을 거두어들임으로써 무법하게 거둬 받는 문을 막도록 하소서. (⟪세종실록⟫ 즉위년 /10/3)

임금이 이에 좇아 그 과전의 포백으로 수납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원하는 바에 따라 그 지방의 시가로 바치게 하되, 어기는 자는 수령이 아뢰게 하여 조사하게 하였다.

재해 등이 닥치면 피해지역 조사 다음으로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하면서 하늘에 빌었다. 하늘에 비는 것은 꼭 종교 행위라기보다 당시로서는 민심을 안정시키는 방법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 기도하다

(가뭄이 든 각도 경내의 산천에 기도하게 하다) 예조에서 계하기를 "이제 여름을 당하여 때가 지나도 비가 내리지 않아 민생이 염려되오니(民生可慮), 가뭄이 있는 각도의 주·현에서는 경내 산천에 기도하되, 비가 내릴 때까지 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1/5/28)

(보제 중지하고 기우제를 지내다) 예조에서 올리기를, "지금 벼이삭이 열매 맺을 때에 가뭄이 심하니, 민생이 염려됩니다.(民生可慮), 청컨대, 보사(報祀, 은혜 보답 제사)를 그만두고 기우제를 지내소서."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 5/7/11)

(황해도에 돌림병이 돌아 각 고을에 여제를 지내게 하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 "황해도에 나쁜 병이 크게 발생하여, 황주ㆍ봉산에서 시작하여 재령(載寧)ㆍ신천(信川)ㆍ문화(文化)ㆍ장연(長淵)까지 널리 퍼졌는데, 목숨을 잃은 자가 많으니, 민생이 염려(民生可慮) 됩니다. 옛사람은 재앙이 닥쳐오면 모든 신에게 제사를 거행하였으므로, 여제(厲祭, 역질 돌 때 하는 제사)를 항상 거행하였습니다. 지금 절후는 이미 지났으나 여제례에 의거하여, 그 고을 수령으로 하여금 제사를 몸소 행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그 제문에 이르기를, "아아, 사람과 귀신은 한 이치인데 ... 진실로 항상 지내는 제사를 예대로 하면 무슨 재앙이 원인이 되랴. 돌아보건대, 백성들이 불행하여 한 지역이 죄다 질병을 만났도다. 점점 서로 전염(傳染)이 되어 퍼져나가는 형세를 막을 수 없으니, 슬프다. ... 내가 지금 이 지방 주인이 되어 마음이 답답하고 걱정이 되도다. 맑은 술을 드리고 밝게 고하나니, 너희 귀신들도 거의 감응하리. ... 이 한 잔을 흠향한 다음 재앙과 돌림병을 없게 하고 화가 도리어 복되게 하여 한 지방을 편케 하고 이 백성을 오래 살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 20/3/2)

이어지는 조치는 경비를 절감하는 일이었다.

⋅경비를 절감하다

호조에서 올리기를, "금년에 벼가 결실이 잘못되어 백성들의 생활이 염려(民生可慮), 되오니, 필요 없는 경비는 감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그대로 좇았다. (⟪세종실록⟫ 2/10/1)

⋅ 문소전 외의 각전과 궁에 진상(進上)하는 것을 금하게 했다.

각 전과 궁의 진상을 금했다. 그리고 나아가 문소전 외의 각전과 궁의 진상을 금하게 했다.

예조에 전지하기를, "지금 가을[西成]을 당하여 여러 날 비가 내리지 않으니, 민생이 염려(民生可慮) 된다. 각 도에서 진상할 물선(物膳)을 마련하는 폐단이 또한 적지 않으니, 문소전(文昭殿) 이외의 각전(各殿)과 각 궁(宮)의 보름 전, 보름 뒤의 진상을 일체 정지하여 끊으라." 하였다. (⟪세종실록⟫ 21/7/4)

⋅공사 간의 부채 관리의 포흠을 징수하지 말게 했다.

호조에 전지(傳旨)하기를, "비가 때를 못 맞추어 민생이 염려되니(民生可慮), 공사간(公私間)의 부채(負債)와 관리가 포흠(逋欠. 관청에서 물건을 사사로이 써버림)낸 것을 아직 징수하지 말게 하라." 하였다.(⟪세종실록⟫ 21/7/4)

재난의 진전에 따라 재난의 조사를 정확히 하고 해당지역의 조세를 감면하고 한편 민심의 안정을 위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공사간의 불필요한 경비를 줄여 나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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