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미국 대선 결과, 트럼프 2기 시대가 확정됐다. 이에 숙명적으로 세계 시장을 지향하는 우리 자동차 산업이 직면할 이슈가 부각된다. 친환경 정책 기조 약화, 미국 생산압력 증가가 쟁점으로 지목됐고, 그에 못지않은 변수는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으로 대표되는 자동차 전자화 심화일 수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정부효율성위원회(DOGE)를 맡아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규제에 폭넓게 개입할 가능성이 높고, 대(對) 중국 커넥티드카 규제를 계기로 빅테크를 위시한 정보기술(IT) 기업의 관련 사업 진출이 본격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친환경화와 달리 단기간에 미래차의 중핵으로 자리잡은 전자화 추세는 발전상을 예단하기 쉽지 않다. 전자화는 물리적 요소의 제약이 적고, 기술의 응용처가 넓은 까닭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추세가 전기에너지의 보편화와 반도체·소프트웨어(SW) 기술의 융합에 따른 산물인 동시에 자동차의 시·공간을 가치있게 활용하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우리는 전자화의 조류를 두고 한국 자동차 산업의 현실을 재점검하고, 종착점인 완전 자율주행차로 노정을 구상해야 한다.
전자화에 있어 한국이 직면한 과제는 무엇일까. 기술은 사회와 공진화(共進化) 한다는 이론에 비춰볼 때 기술 성과의 사회적 활용에서 우리 자동차 산업이 최적의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것이 문제다. 대표 사례로 그간 개발·실증이 계속 진행된 자율주행차는 미래 가치에도 지금껏 국내 소비자에게 어떠한 효익을 각인시켰는지 설명하기 쉽지않다. 사회적 지지 기반이 약하니 대규모 투자와 규제 혁파가 이뤄지지 않고, 업계는 국내보다 해외 시장의 가능성에 눈을 돌리는 형국이다. 자율주행의 미래에 도달하는 데 산업 경쟁력을 지속하려면 사람이 기술을 관망하기보다 그 가치에 스며들게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사회가 직면한 이슈와 신기술의 접점을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한국이 직면한 심각한 고령화 문제를 우선 다뤄볼 수 있을 것이다.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이 전 인구의 19.2%이고, 2050년 4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고령 운전자 사고 빈도가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는 고령 운전자의 사고 예방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주요 대책인 고령 운전자 자발적 면허반납에 호응한 비율이 2023년 2.3%에 불과함을 보면 고령인에게 자가용 이외 이동수단이 충분하지 않거나 그들의 생계가 운전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된다. 제도적 노력도 의미가 있겠지만, 신기술로서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한다면 어떤가.
자율주행 기반 기술을 고령 운전자 사고에 적용한다면 고령인 이동 자유와 사회의 활력을 동시에 보장할 수 있다. 최근 발생한 대표적 고령 운전자 사고 중 조작 미숙에 따른 것이 많은 데 아이러니하게 많은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현대차가 선보인 페달 오조작 안전보조(PMSA)를 적용해 운전자가 의도치 않은 발진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기관에서 개발된 비상 제동장치를 탑재하면 고령 운전자가 설령 차량이 급발진한다고 오해하더라도 안전한 정차가 가능하다. 또, 도심에서 차량의 속도를 자동 조절하는 지능형 속도제한 보조시스템(ISA), 운전자 모니터링 기술(DMS) 등도 다양한 고령 운전자 사고 시나리오에서 활용할 수 있다.
전자화로 등장한 신기술을 접목할만한 이슈는 고령화 외에도 다양하다. 졸음·음주·약물 운전 교통사고,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 퍼스널 모빌리티(PM) 사고 등도 기술과 인프라를 연계하면 발생률을 충분히 낮출 수 있다. 나아가 차량을 통해 도로 시설물 손상 등 공익적 정보를 수집·확산하고 교통 체계를 효율화하는 데 관련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즉, 의미 있는 활용처를 발굴하면 우리가 그간 당연시해온 고질적 사회 이슈를 해결할 기술이 이미 가시권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적극적 조치도 중요하다. 사회적 이슈 도출과 함께 사회 전반에 신기술이 확산하도록 돕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예를 들어 그동안 상당한 재정 투입이 이뤄진 전기차 구매 보조금에 맞춰 첨단 기술 적용 차량 구매 시 재정적·행정적 유인을 제공하거나, 고령운전자 등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일부 기술의 적용을 의무화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일본은 이미 '사포카'라는 보조금 제도로 인구 변화에 대응한 사고 예방 기술을 확산했고, 최근 첨단 안전기술(ASV)을 장착한 트럭·버스에 세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유럽연합(EU)이 7월부터 지능형 속도제한 등을 신차에 의무화하고 전자화 기술의 확산을 촉진하는 것도 참고할 사례다.
진화하는 미래차 기술을 사회적 이슈에 접목하면서 얻을 수 있는 편익은 다양하다. 경제적으로 연간 26조8000억원에 달하는 교통 안전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자동차 부품 산업에도 긍정적 기여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미래차 기술의 가치가 확산돼 신기술의 맹아가 싹트고, 선순환 구조가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로 나아가는 굳건한 동력이 될 것이란 점이다.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올라선 한국 자동차 산업이 전자화의 조류를 맞아 또 한번 도약하도록 사회 각계의 중지를 모아야 할 때가 왔다.
나승식 한국자동차연구원장 ssna@katech.re.kr
〈필자〉나승식 원장은 고려고와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정보통신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36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다. 정보통신부 IT중소벤처팀장·지식정보산업과장, 지식경제부 기후변화정책과장·기계항공시스템과장·정보통신정책과장,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신산업정책단장을 거쳐 국무조정실 산업과학중기정책관, 산업부 소재부품장비산업정책관, 무역투자실장, 통상차관보, 무역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2022년 제12대 한국자동차연구원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