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콘텐츠가 세계를 사로잡는 사이, 수익은 조용히 새고 있다. 영상·웹툰·웹소설 등 다양한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무단 복제·유통되며, 창작자와 산업 전반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정식 유통망을 벗어난 콘텐츠는 수익을 탈취당할 뿐 아니라, 산업 자생력을 위협한다. 음지의 경로를 통해 새는 콘텐츠 유통을 막고, 산업의 기반을 지키기 위한 권리 중심의 재설계가 절실하다.
◇확산되는 K콘텐츠 침해…해외 불법유통 비중 '3년 연속 증가'
정부의 저작권 침해 대응 강화에도 해외 불법유통 사이트에서의 한류콘텐츠 침해가 줄지 않고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 '2024 해외 한류콘텐츠 침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해외 불법유통 사이트 게시물 중 한류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은 3년 연속 증가했다. 2022년 15%, 2023년 15.4%, 2024년 17.5%로 증가세를 보였다.
불법 유통 중심에 있는 콘텐츠는 웹툰이다. 웹툰 분야의 불법유통 비중은 28.8%로, 전체 콘텐츠 장르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영상(영화·방송) 분야는 8.8% 수준이다.
불법유통 양상은 단순 복제에서 조직화된 유통으로 진화하고 있다. 크롤링만으로 콘텐츠를 복제해 배포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원본 제공자, 번역가, 편집자, 대사 삽입자, 검수자 등 역할이 분화된 '불법 번역·유통조직'이 활동 중이다. 이들은 디스코드·텔레그램 같은 폐쇄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콘텐츠를 유통한다. 패트리온·코피 등 도네이션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특히 글로벌 불법 유통은 현지 은어와 문화까지 이해해야 탐지가 가능할 만큼 복잡하고 은밀하다. 일부 사이트는 도박·성인 콘텐츠를 유도하는 '미끼 상품'으로 웹툰을 활용하고 있다. 영어·스페인어 외에도 베트남어, 아랍어 등 제3세계 언어 기반 사이트는 탐지와 추적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멈추지 않는 글로벌 '뉴토끼'들…정부 역할 강화 시급
불법 유통 피해의 당사자인 플랫폼이 대응의 최전선에 있다. 카카오엔터는 전담 대응 조직을 두고, 현지 언어와 은어에 능통한 전문 인력을 투입해 문화적 맥락까지 분석하며 추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업계 최초로 자체 비용으로 불법 사이트 운영자에게 소환장을 발부하고, 글로벌 저작권 보호 연합체 'ACE'에 가입해 국제 대응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러나 글로벌 저작권 침해는 기업 단독의 대응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각국의 법제도와 수사기관 간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K콘텐츠 불법 유통은 온라인을 통해 국경을 초월해 국제화되고 있다. 네이버웹툰이 집중 모니터링 중인 대형 불법 웹툰 사이트의 언어 분포를 보면, 영어 40%, 스페인어 37%, 인도네시아어 11%로, 한국어는 12%에 불과하다. 피해의 중심이 해외에 있는 만큼, 국내 수사와 행정력에만 의존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 사례가 불법 웹툰·웹소설 유통 사이트 '뉴토끼'다. 운영자는 이미 신원이 특정됐지만, 일본으로 귀화한 뒤에도 해외 서버를 기반으로 불법 유통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요청에도 일본 정부의 수사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수사가 중단된 상태다.
정부도 최근 일부 불법 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내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구조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저작권 단속에 소극적인 국가들과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외교적 접근과 예산 투입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콘텐츠 수출을 국가 전략으로 삼고 있는 만큼,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요구된다.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 기업이 자구책에 의존하는 구조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불법 유통을 구조적으로 차단하고 권리를 보호하는 공공 시스템이 시급하다”며 “정부 차원의 전면적 대응 없이는 K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도 흔들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혜미 기자 hyem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