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재의 칩 비하인드] 국산 AI 반도체, 정부가 첫 사용자 돼야 한다

2025-11-07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국내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큰 관심을 모았다. 정부도 이를 국내 인공지능(AI)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보고 있다. 고성능 GPU는 AI 시대의 핵심 자원이며 이를 확보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국산 AI 반도체의 입지가 더욱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에서도 초기에는 국산 반도체 도입을 논의했지만 결국 엔비디아 GPU만 구매하기로 결정되면서 국산 AI 반도체 활용 기회는 줄었다.

국산 AI 반도체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는 ‘레퍼런스’ 부족이다. 새로 개발한 제품이기에 누군가가 처음 사용해 성능을 인정해줘야 기술이 발전하고 신뢰가 쌓인다. 이 부담을 치열한 시장에서 경쟁하는 민간 기업에만 맡길 수 없기에 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 중국은 정부가 지원하는 데이터센터 구축 시 엔비디아 GPU 사용을 금지하고 자국산 AI 반도체의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국방·보안·의료 등 핵심 분야에서도 자국산 칩을 사용하도록 하고 연구개발(R&D)과 교육 생태계까지 지원하고 있다. 아직 중국산 반도체의 성능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부 정책 아래 레퍼런스를 빠르게 축적하고 있다.

우리도 국산 AI 반도체의 시장 안착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다만 현재 국산 AI 반도체의 경쟁력을 고려하면 시장에 안정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단계적 접근이 요구된다. 1단계에서는 AI 반도체 연구를 수행하는 대학과 연구소에서 우선 활용하도록 한다. 이들 연구자는 반도체 구조를 이해하고 있어, 국산 AI 반도체가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이를 보완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며 사용할 수 있다. 2단계에서는 교육 현장에 도입해 국산 AI 반도체 기반의 AI 교육을 활성화한다. 이때 학생들이 해외 GPU를 사용할 때와 동일한 수준의 편의성과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교재와 교육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 3단계에서는 보안이 중요한 공공 분야에 우선 적용해 실증 기반을 확보한다. 이를 통해 기술 신뢰성을 높이고 정량적 성과를 축적할 수 있다. 4단계에서는 이러한 레퍼런스가 충분히 쌓인 뒤 산업계로 확산해야 한다.

AI 산업에서 우수한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은 약 2000만 장의 GPU를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26만 장을 확보하더라도 미국과 경쟁을 펼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부도 AI 모델 분야에서 ‘3위 전략’을 현실적인 목표로 내세운다. 반면 메모리반도체 산업에서 우리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향후 AI 반도체가 메모리와 통합되는 새로운 구조로 발전할 경우 우리는 통합된 반도체 구조를 기반으로 AI 산업의 가치사슬 전반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나아가 이를 전략적 지렛대로 삼아 주요 글로벌 AI 빅테크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도 열릴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국산 AI 반도체의 레퍼런스 확보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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