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첨단인재 1000명 모신다더니…'톱티어 비자' 지금까지 3명뿐

2025-10-16

전 세계가 AI 반도체 등 첨단 산업 인재 확보를 위해 치열한 영입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 정부가 야심 차게 도입한 ‘톱티어 비자’ 제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장에서는 지나치게 까다로운 요건 탓에 실질적인 인재 유치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무부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도입된 톱티어(Top-tier) 비자 발급 건수는 3건에 불과했다. 반도체 분야에서 대만 국적 1명과 미국 국적 1명, 이차전지 분야에서 일본 국적 1명에 그쳤다.

‘톱티어(Top-Tier) 비자’는 ▶세계 100위권 이내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500대 글로벌 기업이나 연구기관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고 ▶한국 1인당 국민총소득(GNI)의 3배 수준인 연소득 약 1억5000만원 이상을 올리는 고급 인재에게 즉시 거주 자격(F-2)을 부여하는 제도다. 배우자의 취업 허용, 온라인 비자 신청 및 연장, 출입국우대카드 발급 등 다양한 편의 혜택은 물론 세제·교육·주거 등 정착 지원도 포함된다. 정부는 글로벌 테크기업 수석 엔지니어급 인재 1000명 이상을 유치한다는 목표로 제도를 도입했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이다.

법무부는 발급 부진에 대해 “제도 도입 초기 단계로 반도체·디스플레이·바이오·이차전지 등 주요 산업 분야의 인력에 우선 적용 중”이라며 “앞으로 AI·미래차·로봇·방산 등으로 적용 분야를 확대하고 교수·연구인력 등 대상으로도 넓히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높은 소득 기준과 학위 요건 등 현실과 동떨어진 조건이 발목을 잡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국내 기업에는 일종의 연봉한계선이 존재하는데, 1억5000만원 이상을 계약 연봉으로 주려면 보통 임원급만 가능하다"며 "애초에 대상자가 적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한국의 비자 요건은 까다롭다는 평가다.예컨대 대만은 2021년 법 개정을 통해 글로벌 500위권 대학을 졸업한 인재가 대만 내 반도체 기업에 취업할 경우, 별도의 심사나 추가 조건 없이 자동으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영국 역시 2022년 도입한 ‘고도인재비자(HPI·High Potential Individual)’ 제도를 통해 세계 50위권 대학 졸업자라면 첨단산업 분야에서 자유롭게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정부가 톱티어 비자에 앞서 2023년 도입한 첨단산업 분야 종사자 비자(E-7-S) 역시 사실상 성과가 저조하다. 제도 도입 첫해 55명이었던 체류 인원은 올해 8월 기준 18명으로 줄었다. 이는 상당수 외국인 전문 인력이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떠났음을 의미한다. 첨단 인재를 새로 유입하기는커녕, 이미 확보한 인재조차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반도체 기업 인사담당자는 “어렵게 영입하더라도 기업 문화나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2~3년 만에 더 나은 조건의 미국 기업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보다 과감하고 파격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 이니셔티브) 연구위원은 “미국 등 선진국 인재를 한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동유럽이나 인도 등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며 “경쟁국보다 낮은 문턱과 좋은 조건을 통해 다양한 해외 인재가 한국에 정착하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하지만, 현재 제도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높다”고 지적했다.

단순히 인재를 ‘유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정착 여건과 사회 전반의 인프라를 함께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전세대출이나 신용카드 발급 요건이 까다롭고, 공공 시스템과도 외국인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정지윤 명지대 산업대학원 교수는 “외국인 인재 유치는 단순히 입국 단계에 그쳐서는 안 되며, 입국부터 정착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체계적인 지원과 혜택이 필요하다”며 “또한 해외 유학생이 한국 사회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등, 한국 사회 전반이 글로벌 인재를 포용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해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글로벌 인재 영입의 ‘골든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이 기술 인재 비자(H-1B) 발급 비용을 인상하자, 주요 경쟁국들은 그 틈을 노려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청년 과학기술 인재에게 거액의 보조금과 정착 지원을 제공하는 ‘K비자’를 신설해 이달 1일부터 발급을 시작했다. 영국은 최근 미국 비자 정책 변화에 대응해 총리 직속 글로벌 인재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가에게 발급되는 비자 수수료를 전면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글로벌 인재 유치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 시기”라며 "국제 흐름에 맞춘 비자 제도 개선은 물론 파격적인 영입 정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