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가 화제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이나 BTS와 블랙핑크의 K-팝이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넷플릭스나 유튜브, 틱톡 같은 독자적인 글로벌 콘텐트 플랫폼이 없는 상황에서 K-콘텐트의 매력만으로 세계적인 관심과 성공을 얻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K-콘텐트의 성공을 뒷받침했던 동력이나 시스템이 약해지는 징후가 보인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음반 수출액이 9년 만에 감소했다. K-콘텐트의 한 축인 음반 산업에 역성장 신호가 나타나고 있는 것. 영상 산업도 제작비 급등과 치열해진 경쟁 구도로 경영 여건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 다니는 콘텐트 기획이나 투자 주체는 글로벌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내 실시간 동영상 서비스(OTT)와 소셜미디어(SNS), 유료 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은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을 극복하기에 협소한 내수 규모와 충분하지 않은 정책 지원, 다소 엄격한 규제 적용으로 고전하고 있다.
글로벌 콘텐트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영국·프랑스 같은 나라는 ▶인구나 언어를 바탕으로 비교적 큰 시장을 확보하고 있고 ▶제도적으로 콘텐트 사업자에 대한 지원 체계가 잘 준비돼 있으며 ▶새롭고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제작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콘텐트 다양성에 관한 관심도 높다.
한국은 어떤가. 제도적 지원과 생태계 조성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만 있을 뿐이다. 글로벌 트렌드나 디지털 콘텐트 산업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와 정책이 발목을 잡고 있다. 정책 기관들은 콘텐트 사업자가 제작과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명확히 하고, 세계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규제를 줄이거나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
콘텐트 사업자들도 글로벌 진출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 시장 진출은 성공 확률이 높지 않아 투자 리스크가 큰 만큼 더 치밀하고 장기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가령 2012년부터 시도된 글로벌 K-팝 축제인 ‘KCON’ 사례를 보자. 현재는 K-팝을 중심으로 K-푸드, K-뷰티에 이르는 다양한 K-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고 함께 즐기는 플랫폼으로서 성장했으나, 초기에는 누적되는 적자로 성공 가능성이 불확실했다. 그러나 CJ의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한국의 음악 콘텐트, 더 나아가 한류 콘텐트 시장을 세계로 넓힐 수 있었던 성공 사례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K-콘텐트 산업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현재의 준비와 노력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전범수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