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귀환에 준비되지 않은 윤석열 외교

2024-12-02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도 하기 전 세계를 흔드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자니 한국 외교에 관한 몇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윤석열 대통령은 실용외교니 국익외교니 하는 자기 공약을 버리고,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대결이라는 조 바이든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따라 가치외교의 깃발을 올렸을까? 가치외교는 오직 미국을 믿고 따르면 미국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란 무속적 소망을 담은 외교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바탕으로 한 미국의 지구적 리더십은 오바마 정부 때 이미 꺾이기 시작했다. 전임 부시 네오콘 정부의 과대 팽창으로 미국 내 피로감이 확산되고,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미국의 위상이 훼손된 결과다. 흔히 트럼프가 국제질서를 끝장낸 사람처럼 알려졌지만, 미국 조지타운대 찰스 쿱찬 교수는, 트럼프는 원인이 아니라 증상이라고 본다.

트럼프가 국제기구를 비난하고 다자주의를 무시하며 동맹을 무임승차자라고 공격하는 행태는 분명 오바마·바이든과 다르다. 그러나 국제 개입을 줄이고, 중국 문제와 같이 미국의 핵심 이익이 걸려 있는 의제에 집중한다는 기본 입장에는 차이가 없다.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은, 국익을 해치는 바이든 방식의 관여를 반대하는 것이지 국익에 보탬되는 관여는 지지한다며 고립주의를 부정한다.

트럼프가 국제질서 파괴자로 각인된 건 그의 거친 개입 방식, 그의 강한 개성 때문이다. 그에게는 목표만 있을 뿐 외교전략이라는 게 없다. 당연히 일관성이 있을 수 없다. 예측 불가능성, 이게 그가 지닌 가장 강력한 무기다. 미국 의존증을 앓는 한국은 그의 눈에 ‘살찐 동맹’, 쉬운 표적이다. 먹잇감이 필요한 그에게 고립주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트럼프에게 남북은 같은 거래 대상이다. 그에게 남북한 차이라면 어디에 더 판돈이 많이 걸려 있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남북이 대립할수록 트럼프의 거래는 유리해진다. 그는 남북 양쪽에 미군 철수, 한·미 연합훈련 중단, 전략자산 전개 중단 카드를 던질 수 있다. 그러면 양쪽은 트럼프의 선택을 받으려 경쟁하고, 트럼프는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쪽과 거래하고 다른 쪽은 버릴 가능성이 있다. 남북 양쪽이 자기 이익보다 상대 손실을 최대화하기 위해 트럼프와 협상할 때 트럼프가 양쪽 모두로부터 챙길 수도 있다.

미국은 남한을 배제한 채 북한과 직접 대화할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는 남한을 배제하는 것에 미국은 아무런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시진핑과 만나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트럼프가 남의 나라 이익을 대신 챙겨줄 리 없고, 시진핑 또한 한국을 배려할 이유가 없다.

윤석열은 최근 한·중 정상회담을 마치고 나서 “미국과 중국은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외교정책 전환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미국 과몰입 상태에 빠져 있다가 트럼프라는 찬물을 뒤집어쓰고 뒤늦게나마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는가 했다. 그러나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동맹이 확고해지니까 오히려 중국이 한·중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이 대중정책을 바꾼 게 아니라, 중국이 대한정책을 바꿨다는 것이다.

신원식의 주장은 한·미 동맹 강화가 중국을 견인한다는 보수의 오랜 논리를 따르고 있다. 이 보수의 게으른 논리는 2016년 한국이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를 수용할 때 이미 깨진 바 있다. 이때 중국은 한국을 미국이라는 수렁에서 건져주기는커녕 한·중 수교 이래 최고 수준의 보복조치를 했고, 이후 악화한 한·중관계는 복구되지 않았다. 미국은 중국에 당하는 한국을 지켜만 봤다.

최근 한·중·일 정상회담, 한·중 정상회담 등 한·중 간 미묘한 기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움직임이 한국을 붙잡으려는 중국의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 해도 동맹을 통한 중국 견인이 대중정책의 본령이 될 수는 없다. 한·중관계는 대중정책이란 별도의 중심을 세워 개선해 나가야 할 일이지 대미정책에 종속시키거나, 대미정책의 부수적 효과에 기댈 일이 아니다.

중국이 보내는 신호는 관계 개선 움직임으로 보기에는 너무 미약해 북한의 러시아 밀착을 경고하기 위한 대북용일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귀환을 계기로 많은 의문이 고개를 들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이미 한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주변화되고 있다. 글로벌 중추국가의 꿈이 이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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