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옷 사이에 낀 얇은 티셔츠가
장롱문을 연다
구석진 곳에서 오래 머문 스웨터 사이로
바람 든 어깨를 들이민다
빈손으로 받들고 선 마른 등짝을
동면에 든 짐승에게 입혀줄까
쓰다만 일기장 보며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덩달아 끄덕이는 옷걸이에도
더는 춥지 말라고 입혀주는 옷
날씨가 열어주는 서랍장에 맞춰
잘못 찾아온 바람에게
속지 말자, 더는 속지 말자! 소리친다
아직은 때가 아닌 듯 보온 내의 꺼내 입는다
가시 삭아 내린 나뭇단 풀어
방바닥을 뜨끈하게 데웠다 한들
문밖은 아직 엄동설한인 것을
◇조가경=경북 영양 출생. 2021년 「서정시학」 하반기 신인상. 형상시학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 죽영문학회원. 시집『달리는 거울』이 있음.
<해설> 세상은 아직 춥다. 2월이기 때문이다. 봄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쪽으로 갈린 시국이 국가라는 집의 문틀을 좌 쪽으로 비틀어 놓았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얇고 보드랍고 폼나는 티셔츠를 꺼내입고 싶은데 문틈으로 내다보는 밖은 몰아치는 한파다. 장롱문을 열고 손에 들고 망설이는 시인의 동작에는 엉뚱하지만 다정한 감정이 스며있다. “빈손으로 받들고 선 마른 등짝을/동면에 든 짐승에게 입혀줄까”가 그렇다. 또한 “쓰다만 일기장 보며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 덩달아 끄덕이는 옷걸이에도/더는 춥지 말라고 입혀주는 옷”은 또한 얼마나 엉뚱하면서도 시인 자신은 아니더라도 “옷걸이”를 생각하는 발랄함은 시의 재미를 더해 준다. 속지 말자, 더는 속지 말자! 소리치는 시인은 아직은 때가 아닌 걸 알기에 보온 내의를 꺼내 입는다. 그리곤 세상을 향해 가시 삭아 내린 나뭇단을 풀어 방의 윗목까지 데우려는 다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