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8가’의 가수 손현숙은 지난해에 암태도 소작쟁의 100주년을 기억하는 문화제를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가수 안계섭은 10여년째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 청와대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해왔습니다. 이사 전 그의 청운동 녹음실은 청와대 앞에서 노숙하던 이들의 쉼터 겸 물품창고 역할을 했습니다. 류금신 가수는 ‘단결투쟁가’ ‘희망의 노래’ 등을 부르던 1988년 ‘노동자노래단’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거리에 서고 있습니다. ‘노동자노래단’은 김호철, 윤민석 등이 함께했습니다. 2013년 “추억의 노래가 아닌, 여전히 투쟁의 자리에서 불러지는 위로와 공감의 노래, 힘이 필요한 곳에 주먹 불끈 쥐고 싸울 의지를 만들어주는 노래, 그리고 지지 말고 싸워서 되찾아야 할 많은 것들 중에 우리의 노래가 있음을 새기며 활동하겠다”는 마음으로 결성된 ‘노래로 물들다’의 지민주, 이혜규, 김영희 가수 등은 오늘도 저항의 노래, 연대의 노래가 필요한 곳을 눈여겨 찾아가고 있습니다. 1999년 백자, 이광석, 한선희, 달로와, 이혜진, 지정환 등이 모여 결성한 ‘노래패 우리나라’ 역시 25년째 조국과 민중이 부르는 곳을 찾아다니며 꿋꿋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1993년 부산 지역에서 출발한 ‘통일의노래 희망새’ 또한 30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며 연극과 뮤지컬까지를 겸하는 종합예술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떠올리자니 그들 외에도 한결같이 우리 곁에 있는 박준, 문진오, 이지상, 우창수, 연영석, 김가영, 박경하, 박정환, 임정득, ‘꽃다지’의 정윤경, 정혜윤, 민정연, 옛 ‘천지인’의 엄보컬과 김선수, 그리고 순천의 박성훈, 대구의 이종일, 부산의 황경민, 제주의 조성일과 사이 등도 참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내 삶 정화시켜주던 가수와 노래들
사는 내내 힘겨워하던 나를 일으켜주고, 보듬어주고, 때론 뜨거운 사랑과 반성의 눈물을 흘리며 내 삶을 정화시켜주던 노래들이었습니다. 모임이나 집회나 시위가 끝나고 난 후 한잔 술에 젖을 때면 누구랄 것 없이 그들이 지어준 노래를 부르며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습니다. 생각하면 청년 시절 내가 활동했던 구로노동자문학회 책꽂이에 꽂힌 책들 중에 가장 많은 손때가 묻고, 심지어 너덜너덜 해어진 책은 다름 아닌 민중가요 노래집 몇 권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의 노래는 민중의 노래, 노동자의 노래, 평화의 노래 운동이 시작된 지난 40여년 동안 이 땅을 데우는 핏줄이 되고, 이 땅을 밝히는 불꽃이 되고, 한 시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선명한 이정표들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서야 했던 때도 많았습니다. 누군가 다시 자신의 목숨을 던져야 했던 숱한 민족·민주·노동 열사들의 장례식장에서 그들 중 누군가는 다시 추모가를 부르고, 나는 추모시를 읽어야 했습니다. 무대는커녕 길바닥일 때가 많았습니다. 관객의 일부분은 늘 경찰 공권력들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를 인해전술처럼 둘러싸고 있던 그들의 수가 우리 노래와 시를 듣는 동지들의 숫자보다 몇 배는 많던 현장도 적잖았습니다. 그럴 때면 더 기운을 내어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꽃도, 무덤도, 십자가도 없이 “우리의 노래가 이 그늘진 땅에 햇볕 한 줌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 하나였습니다.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어떤 이들에게 작은 힘이나마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망이었습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5만원”에 갈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이 하루빨리 오면 좋겠다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을 안고 그들은 오늘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과 평화, 생태환경과 소수자들의 권리를 지키고자 싸우는 현장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참 가난한 삶입니다.
민중가요 축제서 소환하는 ‘촛불’
그런 그들이 한데 모여 11월17일 노무현시민센터 공연장에서 민중가요 페스티벌을 엽니다. 날만 새면 ‘윤석열 오빠네’ ‘김건희의 나라’ 등으로 모욕당하고 있는 이 땅의 민주주의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고, 광화문 촛불시민혁명의 기억을 다시 소환하는 무대입니다. 제5회 민중가요 페스티벌 ‘데모스크라티아 - 국민을, 주권을, 혁명을 노래하라’입니다. 윤석열 정권 2년 반 동안 벌어졌던 이태원 참사, 노조법 2·3조 개정 거부, 친일역사쿠데타, 전쟁위기 조장 등을 각각의 소주제로 삼아 노래와 영상, 시낭송, 퍼포먼스, 극 등 다양한 형식으로 형상화해 보는 무대입니다. 다시 또 한번 역사의 격변을 만들어야 할지 모르는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때, 앞장서 노래 부르는 그들과 함께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펼쳐보는 아름다운 날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