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에서 최근에 출간한 저서 ‘푸드트렌드 2025’에서 농촌진흥청에서 수집 중인 수도권 512가구 1434명의 2016년부터 2023년까지 8년간 장보기 영수증을 바탕으로 장바구니 변화를 분석했다. 우리나라 가정에서 일상 식사의 목적으로 가장 빈번하게 구매하는 계란, 콩나물 등을 비롯한 98개 신선 식재료 품목의 구매 변화를 추적했더니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과일류 전반 소비 급감에도
토마토·딸기·포도 구입 늘어
취향별 세부품종 소비 증가 탓
다양성 추구가 농업 성장시켜
먼저 물가상승분을 고려한 실질 구매액 기준으로 보았을 때 채소류 및 과일류는 해당 가구의 2022~23년 수치가 2016~17년 보다 각 1.1%, 11.8% 감소했다. 동일한 기준으로 신선 축산물의 구매는 10.3%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국내 쌀 소비가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축산물이 주식(主食)의 제왕 자리를 넘보고 있었다.
채소류의 구매가 과일보다 덜 감소한 것은 샐러드용 채소의 구매 증가도 한몫했고, 가정 내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빈도가 늘어남에 따라 함께 먹는 쌈 채소를 동시에 구매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쌈장의 구매 금액과 횟수가 증가하였고, 고추장과 된장은 금액에서는 증가하고 횟수는 감소하였으며, 고기 먹을 때 등장할 일이 별로 없는 간장은 금액과 횟수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외 대부분의 국내산 과일, 그리고 고기와 관련 없는 채소류들의 구매는 8년간 꾸준히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 품목에 대한 장보기 구매가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드물지만 구매가 늘고 있는 품목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품목은 토마토, 딸기, 포도였고,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소비자들이 구매할 때 대체로 세부 품종을 따져서 구매하는 품종이라는 점이다. 토마토는 같은 기간 실질 구매금액 기준 15.1% 증가하였으며, 포도는 8.7%, 딸기는 0.9% 증가했다.
해당 패널들의 구매 영수증을 살펴보니, 토마토의 경우 품종명, 또는 품종명과 연계된 명칭이 기재된 경우가 54%에 달했다. 찰, 방울, 캄파리, 대추, 애플, 체리, 플럼, 흑 등의 명칭을 달고 판매되고 있었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취향과 용도에 맞는 구매를 해온 것이다. 2018년 샤인 머스캣의 출시로 포도 품종에 크게 관심을 가지게 된 소비자들은 최근 들어 캠벨얼리, 거봉, 블랙사파이어, 크림슨 등 역시 자신의 입맛에 맞는 포도를 구매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고, 이런 구매 성향의 변화가 전체적인 품목 성장에 기여했다. 영수증에 포도의 품종 기재 비중은 대략 78%에 달했다. 딸기의 경우도 품종명이 기재된 비중이 25% 정도였는데 설향, 금실, 장희, 죽향, 킹스베리 등 품종별로 차별화된 맛과 식감으로 취향 구매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밥과 같은 주식이 아닌 이상, 어떤 음식이든 반복적으로 섭취하면 물리기 마련이다. 물리게 되면 이후 그 품목에 대한 구매를 줄이거나 중단하게 된다. 이를 ‘물림(satiation) 현상’이라고 한다. 이런 물림 현상이 나타나지 않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당 품목에 다양한 맛, 향, 용도의 상품을 제공하며 번갈아 소비토록 하는 ‘다양성 추구 행동(variety seeking behavior)’을 유도하는 것이다.
예컨대 같은 토마토만 계속 먹다 보면 금방 물리게 되니 찰 토마토, 방울토마토, 캄파리 토마토 등을 번갈아 구매, 섭취하게 함으로써 물림 현상을 방지하고 오히려 구매를 촉진할 수 있다. 한 품목 내에서 다양성이 존재하고, 소비자들이 그 다양성의 다름을 이해하고 즐기기 시작하면 그 품목이 성장한다. 가장 어리석은 방법은 이미 물리고 있는 토마토를 싼값에 더 많이 사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대 푸드비즈니스랩과 마켓컬리의 협업으로 시작된 ‘취향 찾기 프로젝트’는 2022년 사과를 시작으로 딸기, 커피, 복숭아, 참기름, 감자 등 다양한 식재료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데 기간 한정 샘플 박스를 구성, 판매하여 소비자들이 한 품목 내 다양한 품종과 구색을 경험하고, 자신의 취향을 찾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 진행 이후, 예컨대 사과의 경우 양광, 시나노 스위트, 시나노 골드와 같은 소량 생산 품종 사과의 판로가 2년 만에 확실히 열렸다. 선호하는 소비자 계층이 생긴 것이다.
또한 감자에 대한 취향찾기 프로젝트 이후, 포슬포슬한 분질 감자뿐만 아니라 찰진 점질 감자에 대한 선호를 가지게 된 소비자들이 등장했고, 이후 마켓컬리에서 감자 판매량이 약 20% 성장하는 현상까지 관찰되었다. 감자에도 다양성과 취향이 존재하며, 다양성 추구 행동으로 품목 자체가 성장한다는 것이 판매량으로 확인된 것이다.
미식(美食)은 비싼 음식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에서 다름을 알고, 그 다름을 즐기며, 그 다름에서 내 취향을 찾는 것에서 시작한다. 미식은 농업을 성장시킨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