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숙면의 밤’ 누리시길 바랍니다

2025-04-05

※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3월 31일

지난달 28일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강진으로 사망자가 1700명이 넘었습니다. 이번 지진은 1912년 이후 100여 년 만에 가장 큰 규모입니다. 한 지질학자는 이번 지진의 위력이 “원자폭탄 334개와 맞먹는다”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1면에 만달레이 건물 잔해에서 구조 활동을 하는 사진을 썼습니다. 이날 국내에서는 경남·경북을 휩쓴 산불이 꺼졌습니다. 사진을 선택할 때 국내사진이 해외사진보다 우선입니다만, 미얀마 지진은 새로 발생한 사건인 데다가 사망자 규모까지 커서 마음이 좀 더 기울었습니다.

■4월 1일

영남지역이 산불이 열흘 만에 진화됐습니다. 7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주택 3379채가 전소한 역대 최악의 ‘산불 참사’로 기록됐습니다. 경북 의성군 단촌면의 한 주민은 이재민 대피소에서 돌아오자마자 밭으로 향했습니다. 1면 사진은 불에 까맣게 탄 나무들 사이로 한 주민이 푸른 마늘밭에서 작업하는 모습입니다. 복구와 회복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 한 장면을 잡기 위해 사진기자는 경북 안동과 의성을 종일 누볐습니다.

■4월 2일

오전 회의 중에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 탄핵 선고일을 공지했다는 속보가 떴습니다. 순간 회의 참석자들의 표정이 일제히 밝아졌습니다. 지긋지긋한 ‘불면의 밤’의 끝을 상상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필 ‘만우절’이라 속보를 잠깐 의심도 했습니다.

1면 사진은 경찰이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헌법재판소 주변을 ‘진공상태’로 만드는 장면입니다. 탄핵 심리가 길어지면서 자주 찍기도 했고 그래서 너무나 익숙한 사진이지만, 이날은 1면 사진 자격이 충분했습니다.

■4월 3일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불안의 끝이 보인다”는 시민들과 시민사회종교단체 등이 밤샘농성, 오체투지, 파면버스 운행, 100만 탄원서 제출 등 총력전을 펼쳤습니다. 전원일치 파면일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으나, 뉴스채널 자막에 “5대3, 4대4, 재판관들 사이 고성” 같은 내용이 반복해서 뜨는 걸 보고 심란하기도 했습니다.

1면 사진은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의 오체투지와 비상행동 활동가들이 대통령 관저 인근에 붙인 압류스티커, 밤샘 농성한 ‘키세스’ 시민의 모습을 콤보로 구성했습니다.

■4월 4일

12·3 비상계엄 이후 무너졌던 일상을 회복할지를 결정하는 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기각이나 각하보다 전원일치 인용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의 빈도가 더 높아진 듯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선고를 앞둔 날이라 헌재와 주변의 사진이 유독 많았습니다. 헌재 앞 전자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탄핵사건 선고 일정을 표시한 사진을 1면에 썼습니다. 개인적으로 글자나 숫자 위주로 된 사진을 1면에 쓰는 건 자제하자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탄핵심판 선고 일정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으니 신문을 집어든 독자들이 어떤 기사보다 반가웠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4월 5일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시각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예측을 했으나 혹시나 하는 불안도 있었던 탓인지 순간 찌릿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사무실에서는 안도의 한숨과 환영의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토요일자 지면을 오랜만에 만들었습니다. 호외가 아닌 신문 ‘특별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날 1면 사진이 될 결정적 순간은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선고 직후의 환호였습니다. 하지만 특별판 1면은 사진 없이 제목만 넣는 걸로 정해졌습니다. ‘끝내, 시민이 이겼다. 다시, 민주주의로’ 긴말 필요 없는 제목입니다. 사진이 없어서 특별해 보이기도 하는 이 지면은 오래도록 역사에 기록되겠지요.

계엄에서 탄핵까지 주인공은 시민들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직 갈 길이 남았지만, 오랜만에 ‘숙면의 밤’ 누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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