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해피엔드

2025-05-08

인류는 멸종할 것이다. 소행성 충돌, 바이러스, 핵전쟁… 무엇이든 간에 인류는 언젠가 사라진다. 지구 역사에서 인류의 존재는 아주 잠깐의 일이다. 인간이 없어도 지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환경 파괴를 하면서 문명을 확장해 온 인간이 사라지는 결말은, 지구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피엔드가 아닐까? 행복과 불행을 가릴 필요도 없는, 자연의 순환 같은 것.

그러나 목전의 종말을 기다리는 인간은 유쾌하지도, 평온하지도 않을 것이다. 지난 4월30일 개봉한 <해피엔드>는 근미래를 그린 영화다. ‘머지않아 일어날 것이라고 관측되는 난카이 트로프 지진이 한동안 일어나지 않은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네오 소라 감독은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에 끊임없이 노출되면서 점점 더 압박감만 커지는 사회.’

근미래의 일본은 감시 사회다. 지진으로 벌어질 위험을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사회의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 검문이 강화되고, 일본인이 아니라면 반드시 증명서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수시로 재난 경보를 울리고 공포를 자극한다. 학교는 곳곳에 설치된 CC(폐쇄회로)TV로 학생들을 감시하며, 복장 불량과 교칙 위반 등을 인공지능(AI)이 판단해 벌점을 매긴다. 고교 3학년이며 테크노 DJ를 꿈꾸는 유타와 코우는 밍과 아타, 톰과 어울려 다니며 성인만 입장하는 클럽에 들어가고 교장이 아끼는 차에 소소한 장난을 친다. 악동들이다. 그들에게 미래의 지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당장의 음악이 중요하고, 즐거운 교우 관계가 모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즐겁지 않다.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정부에 맞서 시위를 벌이고, 학교의 감시 체제에 항의하는 학생들도 있다. 코우는 앞에 나서 싸우는 후미에게 끌린다. 코우는 재일 한국인이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 극우들이 낙서하고 오물을 던진다.

이방인은 코우만이 아니다. 밍은 중국계이고, 톰은 흑인 혼혈이다. 그들 모두 일본의 ‘국민’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지만, 그들은 혐오의 대상이고 차별당하는 존재다. 재난이 닥치면 위험 요소로 분류되는.

네오 소라가 관동대지진 당시 발생한 조선인 학살을 조사하던 때에, 일본에서는 재일 한국인을 겨냥한 혐한 시위가 한창이었다. 미국에서는 경찰이 흑인을 과잉 진압으로 죽이면서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일본과 미국,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차별과 혐오를 보면서 네오 소라 감독은 생각했다고 한다. 뿌리 깊게 차별이 남아 있는 일본에 거대한 재난이 닥쳐 모두 힘들고 불안해진다면 다시 조선인 학살 같은 것이 벌어지지 않을까?

코우는 후미를 따라 모임과 집회에 나간다. 유타는 음악과 장난 말고는 관심이 없다. 둘의 사이는 조금씩 균열된다. 어린 시절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은 유타, 아이들의 세계에서 벗어나려 하는 코우. 인생에서 조금씩 다른 궤도를 걸어가면, 점점 멀어진다. 한때의 죽마고우와 절연하기도 하고, 너무 다른 층위에 존재함을 깨닫고 그저 돌아서기도 한다.

추억만으로 현실을 덮기에는 이 세계가 너무 참혹하다. 파시즘 체제는 계속해서 혐오의 대상을 만들고,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이기적인 세계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절망할 수도, 비관에만 빠질 수도 없다. 그러기에 세계는 또한 아름답다. 코우는 결정적인 순간에 약해진다. 싸우다가 자신이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비참했다. 코우가 망설이는 순간 유타가 장난처럼 저항한다. 애초에 유타는 가벼웠고, 가벼워지려 했으니까. 그리고 유타는 퇴학을 당한다. 무거운 코우와 가벼운 유타, 누가 더 우월하다거나 잘나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 있었고, 자신에게 충실했고, 강압적인 권력을 조롱하거나 싸우려고 했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미국인이든 그들은 누군가 규정해 주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말하고 움직이는 존재다.

<해피엔드>는 졸업식 후, 육교 위에서 만난 유타와 코우의 모습으로 끝난다. 화해라고 할 것도 없다. 서로의 길이 다를 뿐이다. 서로 이해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들은 각자의 길을 성실하게 갈 것이다. 멈춤 화면으로 잡은 유타와 코우는 마지막에 다시 움직인다. <해피엔드>는 선명하게 갈림길을 보여주고, 이후 유타와 코우의 행보를 상상하게 한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삶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언젠가 인류가 멸망하더라도, <해피엔드>의 유타와 코우는 세계의 어딘가에서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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