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1기 겪었던 윤병세 조언 "크게 주고 크게 받아라" [트럼프 어게인④]

2025-01-15

"동맹을 거래 상대로 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국판 거래외교'를 해야 합니다. 한국도 판을 크게 보고 '빅 기브 앤 빅 테이크'를 하는 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 정지·탄핵 국면에서 외교수장으로서 트럼프 1기 행정부를 맞았던 경험이 있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14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한·미 동맹에서 방위비 분담 차원을 넘어 상호 호혜적인 분야를 발굴해 트럼프와 크게 주고 크게 받는 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2017년 국내 리더십 공백 상태에서 대미 외교에 직접 관여한 전직 고위 당국자들에게 '트럼프 2기 대응법'을 들어봤다.

윤 전 장관은 구체적으로 "조선업, 에너지 산업뿐 아니라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기술, 해양·사이버·우주 등 3대 안보 등에서 '윈-윈'할 수 있는 교집합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반도 정책을 구체화하기 전 "첫 입력(input)이 중요하다"라고도 그는 밝혔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초반에는 2017년 2~4월 석 달에 거쳐 국방장관(제임스 매티스), 국무장관(렉스 틸러슨), 부통령(마이크 펜스)이 연이어 한국을 찾았는데 이때마다 윤 전 장관은 한국의 입장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판이 짜이기 전에 우리 이야기를 초기에 잘 입력하면 그게 하나의 틀이 된다"는 게 윤 전 장관의 생각이다. 실제 윤 전 장관이 2017년 3월 방한한 틸러슨 국무장관에게 한반도 문제 관련 입장을 긴 메모로 정리해 전달하고 이후 구두로 다시 강조했는데, 같은 해 4월 발표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같은 달 유엔 안보리 외교장관회의에서 틸러슨의 발언에 해당 입장이 꽤 반영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윤 전 장관은 "트럼프는 차기 중간선거 전 정치 동력이 충분한 초반 2년 동안 빠르게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라며 "우리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에서 한·미(6일) 및 한·일(13일) 외교장관 회담이 연이어 열린 가운데 윤 전 장관은 "국제 무대에 우리도 많이 나가고 (외국 인사도) 많이 불러들이는 게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유용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안보도 증진되고 대외신인도도 개선된다"며 권한대행 체제에서 외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자는 주장이다.

윤 전 장관은 "연초부터 펼쳐질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 뮌헨안보회의,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와 군축회의, 안보리 회의, 주요 20개국(G20) 회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의 등 다자회의를 최대한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오는 11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과 관련해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트럼프는 항상 김정은과 좋은 관계였다고 얘기해 왔으므로 적절한 시점에 김정은을 만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한 "트럼프는 원래 김정은, 푸틴 등 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직접 거래하는 것을 선호한다"며 "다만 김정은에게는 하노이 회담 실패의 기억이 워낙 아프게 남아 있을 것이므로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족스러운 결과가 사전에 조율되지 않으면 쉽사리 협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이 전직 당국자는 "미·중 전략 경쟁이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 분명하므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1기 때보다 더 한·미 동맹을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관련해 이 전직 당국자는 "지난해 10월 타결된 12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을 통해 2030년까지 증액분에 합의했으므로 이런 합의 내용을 견지하면서 더듬수로 넘어가야 한다"며 "국내에서 분담금 증액 압박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을 지레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역시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과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경험한 또 다른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은 과거에 그랬듯이 과도기에 동맹 간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 상당히 신경 쓸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이 '한반도통'인 조셉 윤을 주한 미국 대사대리라는 '임시 대사' 역할로 임명하는 이례적인 결정을 한 것도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전직 당국자는 "다만 관세 등 민감한 사항은 미국이 과도 정부와 깊이 있게 논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는 우선 우크라이나, 중동, 중국 순으로 외교 이슈를 훑을 텐데 한국은 레이더에서 일단 피해 있되, 차후 본격 협상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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